산책의 시간 17
성경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물론 그 주제를 '예수님'이라고 말해도 맞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직접 계시해 주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전도하러 다니셨는데, 그 가운데 전하신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분에 대한 영접, 즉 믿음을 제시해 주셨다(요 1:12).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에 등장하는 '어떤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음부에 떨어져 고통을 당한다. 그는 왜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되었을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어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그리고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9절). 비유 속에는 부자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그는 그 죄로 인하여 음부에 떨어져 고통받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자가 음부에 떨어진 두 번째 이유는, 교만하였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은 교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부자가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이런 모습이 아닌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호사스런 옷을 입고 호화로운 잔치 속에 파묻혀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교만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돈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13절).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재물을 섬기게 되어 있고, 그 재물은 다시 자기 자신을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지게' 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닌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 부자는 그 교만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었던 것이다(벧전 5:5).
돈은 그 성격상 중립적이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죄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음부에 떨어지고, 제대로 잘 사용하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주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신 이유는, 우리의 허영에 있지 않다. 그것을 이용하여 가난한 이웃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요일 4:7,8,20). 그러므로 돈과 재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의 소비에 있지 않다. 거기에는 이웃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올바른 동기 위에서 올바르게 사용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 성경의 주제인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