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강아지가 몰랐던 것

산책의 시간 18

by 박준택


우리나라 속담에는 재미있는 내용을 담은 것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다.




개는 호랑이를 상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덤벼드는 개가 있다. 그 개가 덩치가 크고 용감하기 때문에 덤비는 것이 아니다. 강아지이기 때문에, 그것도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앞뒤 분간하지 못하는 강아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아와 롯의 당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하룻강아지가 호랑이의 날선 이빨과 발톱의 무서움을 몰랐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진짜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심판 대신 평안이 지속될 것으로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멸망하던 날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직 자신들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인식과 함께 심판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죄악들로 얼룩진 일상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자신의 재림을 예고하셨다. 그 예고대로 예수님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때에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다시 오셔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시지만, 반대로 악하고 불의한 죄인들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버려둠을 당하지 않고 데려감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우리의 소유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집착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과 동일하신, 자신의 아들 예수님의 생명까지 내 주셨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 주신 주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그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지 않는다. 직장이나 재물도, 권력이나 높은 지위도, 게임이나 취미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노략질하기 위한 덫에 불과하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은 주님 한 분밖에 없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다(요 1:12). 바로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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