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바디매오의 믿음

산책의 시간 19

by 박준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소원은 다시 보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그곳에서 어떤 맹인을 만났다. 그는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그래서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거지이기도 하였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절). 그의 외침에 예수님은 이렇게 화답해 주셨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42절). 주님의 말씀에 따라 맹인은 다시 보게 되었고 덤으로 구원까지 선물로 받았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가 다시 보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대박을 터뜨렸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가 끈질기게 예수님께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바로 이런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믿고 있었던 그는, 그분이라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외쳐 불렀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주위의 싸늘함뿐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핀잔에 굴복하지 않았다. 더욱 큰 소리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다. 맹인이 '크게 소리 질렀다'는 말은, 본래 까마귀의 우는 소리에서 유래한 의성어이다. 이것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동물들의 울부짖음같이 '악쓰는 소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끈질기게 외쳤던 그의 목소리에는 이런 처절함까지 묻어 있었다.




만약 그가 사람들의 핀잔 앞에서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물러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보고 구원받는 축복 대신 큰 낙심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좋은 것이지만, 끈질기게 매달리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는 믿음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불의한 재판장에게 매일 찾아가 하소연하는 과부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려주기도 하셨다.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 앞에서 두 손 두 발 모두 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부에게 매일 시달림을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맹인의 이름은 '바디매오'이다(막 10;46). 그는 맹인이자 거지였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 있고,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눈이 멀고 거지인 바디매오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바디매오처럼 간절한 믿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맹인으로, 거지로 만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의 눈에는 이런 조건이 좋고 나쁘다는 기준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바디매오나 우리나 모두 똑같은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그분 앞에서 그냥 죄인일 뿐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디매오가 맹인이었기 때문에 거지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제대로 인식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보다 더 어두운 맹인이고,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비참한 거지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이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이유는, 바디매오와 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데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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