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16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서 '백미'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에 있다면, 탕자의 이야기는 그 사건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지에 대한 지침서가 된다.
성경의 주제를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고 할 때, 탕자의 반응은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탕자의 돌아오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나머지 그에게 주어진 축복에 대하여 주목하지 않는다. '축복'은 돌아감의 동인이 되기 때문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누가복음 15장에 그 축복이 제시되어 있다.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b절). 거리는 멀었지만 아버지는 걸어오는 사람이 아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면서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산등성이에 올라 날이면 날마다 먼 곳을 바라보면서 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돌아오는 아들을 보았을 때 "이놈, 다리몽둥이를 부셔버릴 거야" 하면서 분노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처럼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불쌍하게 보았다. 몽둥이를 들고 달려가는 대신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위해서 달려갔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냥 따뜻하게 안아 주시면서 죄로 인해 생긴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이 사랑 많으신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회개하면 바로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어진다.
회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축복은, '신분이 죄인에서 아들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조아렸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21절). 하지만 아버지는 종들을 시켜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 주었다(22절).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였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24절). 돌아온 아들은 이로써 외형적으로나 신분상으로 온전한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 이러한 축복은 요한복음에도 동일하게 약속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회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세 번째 축복은,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3-24절). 천국 잔치는 두 가지 점에서 앞서 거지였던 아들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첫째, 거지였을 때에는 굶주려 죽을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다. 둘째, 거지였을 때에는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소외와 수치라는 고통을 주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그와 함께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천국 잔치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놓치더라도, 심지어는 우리의 목숨까지 잃을지라도, 천국 잔치만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 잔치가 영원토록 계속되기 때문에 더더욱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이유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