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21
누가복음 20장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이 부활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신명기(25:5)의 '형사취수법'에 근거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장남이 아들 없이 죽어 둘째가 형수를 취하고 그 일이 일곱째까지 이어졌다면,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난해한 질문이었다.
예수님은 이 논쟁이 있기 전에 의인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고(14:14), 또 자신이 친히 죽임을 당하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두 차례나 예고하셨다(9:22;18:33). 따라서 만약 예수님이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시면 자기모순에 빠지고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이 질문에는 결코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의기양양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질문에 이렇게 못을 박으셨다.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되 저 세상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34-35절).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가 명시되어 있다. 첫째, 저 세상에는 부활이 있다. 둘째, 부활한 자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또 예수님은 부활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36절). 첫째, 그들은 다시 죽을 수 없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 둘째, 그들은 천사와 같고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결혼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왜 부활한 사람들로 구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결혼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일까? 결혼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출산을 통하여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부활한 사람들이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통하여 종족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이는 마치 천사들의 숫자가 창세 때부터 그 자체로 충만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부활한 사람들의 숫자도 그 수효를 보충할 필요 없이 이미 충만한 수를 이룰 것이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같은 일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의 사실과 이유에 이어서 부활의 근거까지 제시해 주셨는데, 앞서 사두개인들이 질문할 때 제시한 것과 동일하게 모세의 글을 인용하셨다. 욥기(19;26), 시편(16:9-11), 이사야서(26:19), 다니엘서(12:2) 등에도 부활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만, 성문법인 모세 오경만 믿고 있던 사두개인들을 위해 출애굽기(3:6)에서 인용하셨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37-38절).
예수님이 출애굽기 본문을 들어 당시 이미 죽었던 자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름을 들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이 비록 이 땅에서는 죽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시라면, 그것은 그분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곳에서 그분의 통치도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거나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이유도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하나님이 죽은 자들이 아닌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은 부활 사상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말씀을 끝으로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더이상 아무것도 감히 물을 수 없었다.
이 논쟁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더 이상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둘째, 죽은 자의 부활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이 되라.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