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시절

초딩의 일기장 01

by 박준택


“아빠, 아빠는 어린 시절 뭐하시면서 놀았어요?”

초등학교 3학년생인 서현이의 숙제를 모두 도와주고 잠잘 준비를 하였습니다. 같이 이를 닦고, 소변을 누인 후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서현아, 기도하자. 내가 기도해 줄게.”
팔베개해 주고 기도를 중간 정도 할 때 녀석은 대개 스르르 잠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나 봅니다. 뜬금없이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네요. 음, 어린 시절이라. 그것도 삼사십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인데......




저는 3살 때 신안군 안좌면이라는 섬에서 나와 고등학생 때까지 목포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다도해에 뿌려진 섬들을 잇는, 목포 부둣가 옆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다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에겐 여름이 제일 신나는 계절입니다. 저는 서현이보다 5년이나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에서 헤엄을 치고 다녔답니다. 수영복이 없던 시절이라 입고 있던 삼각팬티를 수영복 대신 입고 헤엄을 쳤습니다. 그나마 가난해서 팬티를 입지 못한 녀석들은 노팬티로 바다를 누볐습니다. 창피한 게 뭐 대수겠어요? 바닷물 속으로 못 들어가는 것이 대수지.

그런데 저희가 헤엄치며 놀던 수영장이란 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헤엄치는 옆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연신 드나들었거든요. 그래서 부둣가에서 일하는 분들이 위험하다고 막 욕을 하면서 나오라고 협박하기도 하였지만, 워낙 그런 협박 속에서 커왔던 저희로서는 그게 어디 협박으로 들리기나 하겠습니까.

때로는 무서운 아저씨들을 만나면 된통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부둣가에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던 옷을 그 아저씨가 걷어가 버리면 난리가 납니다. 부둣가에 무릎을 꿇고 손들고 벌선 이후에나 옷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벌서는 동안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알몸을 새까맣게 태워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낄낄거리며 손가락질할 때는 정말이지 창피해서 죽을 맛입니다. 그래도 옷을 돌려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닷물 속으로 퐁당퐁당 뛰어들어가 놉니다. 벌을 주면 그때 가서 또 받으면 되거든요. 몸으로 때우는 거야 정말로 가볍죠. 그게 뭐 벌 축에나 드는 건가요? 몽둥이만 아니라면 그건 일종의 스포츠죠.

헤엄치다 지치면 부둣가에 줄지어 앉아 낚시질합니다. 낚싯대는 없지만, 낚싯대보다 훨씬 감 좋은 최신형 팔과 손이 낚싯대 역할을 합니다. 뙤약볕에 목 뒤며 등이며 팔뚝이 벌겋게 익어가지만, 망둑어가 입질하는 짜릿한 쾌감은 얼음처럼 시원하게 온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낚시질하다 눈앞으로 크고 빠른 배가 지나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그곳을 향하여 다이빙해 들어갑니다. 배들이 일으키는 큰 파도를 타기 위해서죠.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파도를 따라 하늘의 구름과 손잡기도 하고 바닷속 물고기와 농담 따 먹기도 합니다.

햇살이 바닷가를 넘어갈 때면 바쁜 일과로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일제히 취미 생활에 들어갑니다. 고무신을 바닷물 위에 띄워 놓고 송사리를 누가 많이 잡나 시합합니다. 숨도 쉬지 않고 송사리 떼를 추적하다 보면 벌써 저녁밥 먹을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밤이 되면 저희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야간 수영을 즐겼습니다. 아버지의 등에 올라타 목만 꼭 잡고 있으면 행복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아버지가 헤엄치며 나아갈 때마다 캄캄한 바닷물이 우리 옆으로 조용히 갈라졌어요. 가끔 바다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섭기도 하였지만, 아버지의 등 위에 있으면 든든합니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중퇴하셨지만, 그때만큼은 대학 나온 아빠 부럽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윗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고 놉니다.

한 손에는 나무칼을, 다른 손에는 연탄재를 쥐고 윗동네를 치러 올라갈 때면, 모든 아이의 눈에는 전의의 불꽃이 활활 타오릅니다.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이삼십 명의 아이들이 윗동네를 칩니다. 이에 질세라 윗동네 아이들도 살벌한 욕설과 함께 “와아~!” 하면서 일제히 침략자들을 향해 연탄재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쌍방을 향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간 연탄재가 연막탄처럼 여기저기서 터지면 진짜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나무칼끼리 서로 부딪치고 주먹이 날아가고 눈 속으로 연탄재가 사정없이 들어옵니다.

“후우~퇴!”
누군가가 요렇게 소리치면 아랫동네 아이들은 불알이 빠지라고 도망칩니다. 다 도망쳐 와서는 숨을 쌕쌕거리며 윗동네 아이들을 마구 욕하면서 패배를 자위합니다.
“워메, 그 상눔의 시키들이 무지하게 쎄부러야.”
“근께 뭐시냐, 밀물맹키로 조용하게 올라가서 그놈들을 쳐불자고 안 그래쌌냐. 느그들은 작전이란 것을 몰라분당께.”
“근디, 준택아, 니 으째 그래부냐? 음마, 머리에 피가 나부러야.”

후퇴하는데 윗동네 아이들 가운데 한 녀석이 연탄재를 던진 것이 아니라 돌멩이를 던졌나 봅니다. 제 뒤통수가 그 돌에 맞아 피가 나네요. ‘아후~!’ 그 날 어머니가 데려간 노동병원에서 마취도 없이 뒤통수를 꿰매는데 아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돌멩이를 맞은 자리에 머리카락이 나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일 년간 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때 그 아이들이 괘씸하게 나의 이름 대신 ‘땜빵’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전쟁놀이도 어디까지나 놀이이기 때문에 반나절이 못 되어 윗동네 아랫동네 아이들이 다시 모여 또 다른 놀이를 위해 어울립니다. 아랫동네에 내려와서는, 언 땅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손등이 터지라고 구슬치기를 하거나 자치기며 땅 빼앗기 놀이를 합니다. 윗동네에 올라가서는, 미리 만들어 온 연으로 하늘에다 서로 꿈을 실어나르거나 깡통에 구멍을 뚫어 밤하늘에 밤새도록 불꽃을 수놓기도 합니다.




서현이가 그새 잠들어 버렸네요. 이불을 잘 덮어 준 후에 자는 녀석의 얼굴을 내려다 봅니다. 서현이가 어른이 되면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어떤 추억을 떠올릴까요?

학교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간식을 먹은 후에 피아노 학원, 영어 학원, 태권도 도장 등에 가서 오후 시간을 다 보내게 됩니다. 다른 곳으로 샜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외할머니한테 혼나지, 같이 사는 이모한테 혼나지, 아빠한테 혼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주말에 돌아오는 엄마에게 이렇게 코피 터질 게 빤합니다.
“그러다가 유괴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또 그럴 거야?”

친구들과 어울려 싸돌아다니거나 놀이터에서 흙장난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노는 아이도 없지만, 그렇게 놀았다가는 동네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아들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 내릴 것입니다. ‘저 아이는 엄마도 없나 봐. 이 시간에 학원에도 안 가고. 아이를 저렇게 방치하면 어떡해?’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하여 오후 시간 내내 학원 다니는 서현이. 그리고 저녁에는 학교와 학원에서 내준 숙제하느라 시간을 다 빼앗깁니다.

잠자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나무젓가락으로 고무줄 총이라도 같이 만들며 아들과 함께 놀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들에게 추억거리나 되기는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