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초딩의 일기장 20

by 박준택


“엄마께. 엄마, 죄송해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오뎅 국물 흘린 거, 게임 한 거, 돈 훔친 거, 거짓말한 거 이렇게 많은 잘못을 했어요. 죄송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없게 할 거예요. 못 지키면 평생 50대씩 맞을게요. 정말이에요. 금요일(Friday). 서현이 드림”


서현이가 오늘 엄마한테 매를 맞았습니다. 돈을 훔쳤기 때문이죠. 할머니 방에 있던 이만 원을 훔쳤는데, 그만 할머니께 발각되었고 그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되었습니다. 매를 맞기 전에 그동안 잘못한 것들이 있으면 다 자백하라고 하였는데, 순진하게도 거짓말한 것과 아빠 허락받지 않고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한 것까지 다 실토하였나 봅니다. 엄마가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녀석의 종아리에 새까맣게 그어진 수많은 회초리 자국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네요.


맞을 것 다 맞고 반성문까지 썼습니다. 못 지키면 평생 50대씩 맞겠다는 약속도 하고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약속인지, 녀석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를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반성문에 적어 놓았네요. 그런데 반성문을 쓴 날짜 밑 끝 금요일 표시란에 괄호를 열고 영어로 ‘Friday’라는 단어도 집어넣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웃긴 반성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이상하죠? 그렇게 많은 주의를 듣고, 그렇게 여러 차례 매를 맞는데도 잘못된 행동들이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정상대로라면 주의와 매 앞에서 곧바로 궤도가 수정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집 뒤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는 주말농장에 들렀습니다. 7월 내내 상추 등을 원 없이 뜯어 먹었던 밭입니다. 장마 기간 내내 방치된 밭의 형국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였고, 가을이 들기 전에 김장 무를 심기 위해서였죠.


밭은 우리 부부가 예상하였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였습니다. 상추는 이미 채소이기를 포기하였고, 이름 모를 잡초들이 온 밭을 자기들 세상인 양 뒤덮고 있었습니다. 밭 위쪽에 심어 놓은 고추와 토마토는 잡초에 덮여 거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8월의 끝자락을 붙들고 필사적으로 쏟아지는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아내와 저는 잘 뽑히지 않는 잡초를 뽑기 시작하였습니다. 관리하지 않아 모습이 이상해진 상추, 토마토, 고추 등의 식물들도 잡초와 함께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채소는 삽으로 흙을 뒤집어서 부드럽게 해 주고, 고랑을 만들어 씨앗을 일정한 간격대로 심은 후에 정성껏 물을 주어 키웁니다. 또 우리 밭에 있는 토마토와 고추는 그 지지대를 근실하게 세워주고 마음을 쏟아 관리해 주어야 제대로 자랍니다. 2주 정도만 관리하지 않아도 밭이 엉망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잡초라는 녀석은 참 신기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곳저곳에 싹을 틔우고, 물을 주지 않아도 우량아처럼 쑥쑥 자랍니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입니다. 우리 몸에 좋은 채소는 고된 땀을 흘리고 정성을 쏟아야만 열매를 맺게 하시는 데 반하여, 잡초는 아무 신경 쓰지 않아도 밭에서 이렇게 잘 자라게 하시니 말입니다.




서현이와 밭은 닮은 곳이 많습니다. 인성을 바르게 하고 학업을 증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친 흙을 엎어서 부드럽게 갈아주고, 정성을 다하여 씨앗을 뿌리고 수시로 물과 양분을 주어야 건강한 채소를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잠시 한눈을 팔면 잡초가 무성해지는 밭의 성질이 서현이와 너무 닮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자식이라는 밭도 농부인 부모가 굵은 땀을 쏟으면서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현이의 종아리에 그어진 회초리 자국은, 어쩌면 부모인 저희에게 새겨져야 할 아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리를 게을리한 부모의 탓이니까요. 그래서 반성문도 저희의 몫이고요. 서현이의 종아리에 스며들었을 아픔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고 가슴이 아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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