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옷 젖듯이

초딩의 일기장 19

by 박준택


“아빠, 누워서 해도 돼요?”

“누워서? 에이 누워서 하는 건 좀 그렇고, 앉아서 해야지.”

아빠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이 반쯤 누워 있네요.


“오늘은 앞에서부터 내용이 이어지니까 어제 것까지 하자.”

“큐티를 어제 것부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오늘은 너무 늦어서 졸리거든요.”

“어제 것을 안 했으니까 상관없어.”

“졸린데......”




기온이 떨어진 오늘 밤에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부네요. 창문을 다급히 훑고 달아나는 소리가 더욱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 와중에 서현이와 저는 졸리기만 합니다. 발뒤꿈치부터 종아리와 등을 타고 올라온 따스함이 뒷머리까지 감싸고 있습니다. 미리 켜둔 보일러의 온기가 우리를 덥혀주고 있기 때문이죠.


“서현아, 다리 좀 내려놓으면 안 되겠니? 숨쉬기 곤란하잖아.”

“......”

“다리 내려놓으라고 했잖아. 네 다리가 좀 무겁니? 이것 봐라, 이렇게 통통한 게!”

“아들이 이렇게 아빠 배에 다리를 올려놓고 있을 때 행복한 줄 아세요.”

“근데 이 녀석이, 한 대 맞으려고!”


그렇지만 아빠의 본심은 아들이 제 말을 무시하고 저의 배 위에 계속 다리를 올려놓고 있기를 바라고 있네요. 제법 커 버린 아들의 무거운 다리가 좀 부담되기도 하지만, 아들의 체온이 전해져 오는 다리가 녀석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다리(橋)가 되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좋아요>를 껴안고 자야겠다.”

반쯤 누워서 십 분 정도 큐티를 하고 있던 녀석이 완전히 가로누워버리네요.

“큐티를 하다가 자면 어떡하니? 자 일어나봐!”

“아빠, 저 너무 졸려요. 그냥 이대로 자요. 이거를 껴안고 자면 묵상이 잘 되거든요.”

“그래? 그 말 사실이니?”

“제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에라 모르겠다. 나도 묵상이 잘되게 이걸 껴안고 자야겠다.”

그러면서 아빠도 서현이를 껴안고 누워버리네요.

“<생명의 삶>을 껴안아야지 저를 껴안으면 어떡해요?”

“나는 이럴 때 묵상이 더 잘 되거든.”

“말도 안 돼!”




지난주 수요일에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생명의 삶>을 집었습니다. 그동안 가물에 콩 나듯 하였던 큐티를 매일 빠짐없이 하기 위해서 도우미를 집어 든 것이죠. 아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용 도우미도 샀습니다.


그날 밤 일 년 정도 하지 못했던 아들과 함께하는 큐티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다음날도 거실 탁자에 마주 앉아 성실하게 큐티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범적인 모습에, 아내는 근래 들어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칭찬도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빠와 아들의 한계는 거기까지입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저녁에는 아빠, 엄마, 아들 모두 이불을 덮고 누워서 호호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느라고 하지 못하였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저녁에는 아빠와 아들이 깔깔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느라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 같아, 또 아내가 우리의 모습을 비웃을 것 같아, 아들과 침대에 누워서 몸부림치면서 이상한 모양으로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서현아, 오늘 읽은 내용을 정리해서 이야기해 줄래?”

“있잖아요, 애굽 왕 시삭이 이스라엘을 쳤는데요, 솔로몬의 금 방패를 가져가 버렸고요, 르호보암이 놋 방패로 지키게 하였대요.”

아들이 정리한 내용에 알맹이가 빠진 것 같아 성이 차지 않았지만, 그 작고 촉촉한 입술에서 튕겨 나오는 목소리가 사랑스러워서 아빠는 그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읽으면서 뭘 느꼈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거 같아?”

“르호보암이 겸비하였다가 악하게 된 거요. 하나님은 겸비하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는 것 같아요. 근데, 겸비가 뭐예요?”


아들의 입을 통하여 ‘겸비’, ‘하나님’, ‘용서’라는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아빠는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런 단어들이 서현이의 마음을 젖게 한다고 생각하면 기쁘기 때문이죠. 아빠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서현이를 내려다보면서, 아들을 가랑비에 더 젖도록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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