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분만 더

초딩의 일기장 18

by 박준택


“엄마, 오 분만 더! 제발 소원이야.”


난리 났습니다. 아들은 이불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엄마는 독수리가 병아리 낚아채듯 아들이 덮고 있는 이불을 매몰차게 걷어 버리네요.


그렇지만, 이불이 없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아들이 아니죠. 자기 몸을 이불에 돌돌 말아 모로 누운 채 악착같이 눈을 붙이려고 합니다. 엄마도 여기에서 물러날 엄마가 아니죠. 아들의 귀에다 온갖 듣기 싫은 단어들을 날카로운 목소리에 실어서 날려 보냅니다. 동시에 엄마의 손은 아들을 침대 밖으로 밀어내고 있고요.


결국, 아들은 적군에 끌려가는 포로처럼 등을 떠밀려 화장실로 비틀비틀 들어갑니다. 아들이 자기 살점처럼 귀하게 여기던 ‘오 분’은 한숨 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리고,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보통 저녁 열두 시경입니다. 초등학생 취침 권장 시간을 두 시간을 넘겨서야 겨우 잠을 청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하루에 열 시간씩 자도 잠 귀신이 물고 늘어질 나이인데, 잠을 여덟 시간도 채우지 못하니 기상 시간에도 졸음과의 사투를 벌일 수밖에요.


아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아빠의 잘못이 큽니다. 늦게 퇴근하여 씻고 저녁밥을 먹고 나면 열 시 반 정도 됩니다. 그리고는 아들과 함께 위 스포츠(Wii sports) 게임을 하며 한 시간 정도 스트레스를 풉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행복한 시간이죠. 이것이 끝나면 아빠는 한 시간 반 정도 텔레비전을 시청합니다. 주로, 오락 프로를 보면서 2차로 스트레스 뒤풀이를 하는 것이죠.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는 잠잘 시간이 지났다면서 아들에게 잠자리에 들 것을 권면하지만, 아들은 권면은 권면으로만 받아들이고 아빠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함께 텔레비전을 봅니다. 잠자지 않고 텔레비전 보면서 자기만 자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아들의 항의에 아빠도 딱히 “요놈이!” 하면서 다그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그냥 놓아둡니다.


아내는 이런 부자의 행태를 보면서 당연히 맹비난을 퍼붓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지쳐서인지 아니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신나서 그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들 반대편의 아빠 어깨에 기대어 동참하곤 합니다.


한때는 게임이나 텔레비전 시청 등을 하지 않고 온 가족이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았습니다. 그렇게 배부르고 뿌듯한 가슴을 안고 밤 열한 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언제부터 또 어떻게 해서 이렇게 우리의 모습이 바뀌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네요.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이상한 장면인가요? 방금 끌려나간 아들이 오 분도 안 되어 다시 침대에 누워 있네요.


“서현아, 아직도 안 일어난 거야? 빨리 가서 세수해야지.”

“세수했어요.”

“언제?”

“아빠, 쉿! 엄마가 지금 씻고 있거든요. 그동안만 좀 잘게요.”

“뭘 또 자? 세수했는데 다시 잠이 오니?”

“......”


아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속삭이듯이 코까지 골고 있고요. 녀석에게 세수는 세수이고 잠은 잠인가 봅니다. 새우처럼 몸을 접은 채 가로누워서 소원이던 오 분을 채우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묘하게 사랑스럽네요.


아빠가 이 녀석을 흔들어 깨우면 녀석의 소원을 망치게 되겠죠? 지금 아들이 채우고 있는 오 분의 행복은 여느 때의 다섯 시간의 행복보다 만족 지수가 훨씬 높고 더욱 달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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