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의 일기장 17
“여보, 오늘 한 번만 봐줘요, 응?”
일요일 저녁 9시. 아내가 이 말을 내던지고는 탁자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버리네요. 나와 아들은 어이가 없어 도끼눈으로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요. 지난주부터 겨우 가정 예배를 되살려 놓았는데, 오늘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아내가 몸이 아프고, 또 몸이 몹시 피곤하다고 누워 버리는 바람에, 성경책을 막 펴 놓고 경건하게 시작하려던 예배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습니다.
아내가 몸이 아프고 피곤한 건 사실입니다. 대전까지 내려가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가,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로 아래턱 주변에 자잘한 여드름처럼 뭔가가 잔뜩 올라와 있었으니까요. 지난 금요일 저녁 대전에서 서울에 있는 집으로 올라오면서 대상포진에 걸린 것 같다고, 그래서 그 주변이 아프고 근질거린다면서 울상을 지으며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아내입니다.
토요일 오전에 동네 피부과에 들러 대상포진을 치료하러 갔는데, 다행히 대상포진이 아니라 단순포진 진단을 받았습니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후유증 하나는 덜었습니다. 대상포진 후유증은 흉터가 생기는 것인데, 아내의 턱 주변에 덕지덕지 흉터 자국이 남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에 그런 자국이 생긴다는 것이. 저도 난감하겠지만, 당사자인 아내는, 그것도 여자에게 얼굴 외모는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거기에 흉터 자국이 밭을 이룬다면 견디기 어려운 일이겠지요.
단순포진이지만 잘 먹고 푹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잘 먹고 푹 쉬려 하였지만,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그날 하루 녹초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여파가 오늘 가정 예배를 드리는 저녁 시간에까지 미쳤습니다.
“엄마, 그래도 예배드리는데 누워 있으면 어떡해요?”
참을성 없는 아들이 불만을 터트리네요.
“그래, 당신이 많이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함께 성경을 읽도록 합시다.”
집안의 가장인 아빠는 점잖게 아내를 구슬려 보지만, 오늘만큼은 아내도 도저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거실 바닥이 아내의 몸을 끈덕지게 붙잡은 채 놓아 주지 않습니다. 아내는 계속해서 한 번만 봐 달라고 애원합니다. 할 수 없이 아내가 누운 채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가족은 오늘 나눌 말씀으로 <사도행전> 2장 1~13절을 한 구절씩 돌아가며 읽습니다.
“있잖아요, 오순절 날에 성령이 불의 혀같이 사람들 머리 위로 막 돌아다녔고요, 사람들이 마구 이상한 말을, 여러 말로 막 했는데,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뭐 그런 내용이에요.”
본문 말씀을 다 읽고 아들 서현이에게 본문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설명해 보라고 하였는데,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대충 요약이 되기는 하였습니다.
“서현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순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온 것이란다. 그 사람들이 성령 충만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미쳤다고 흉보기도 한 것이란다.”
“아하!”
“그리고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후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 내려온 날로, 바로 그런 날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의미가 크단다. 왜냐하면......”
아빠는 함께 읽은 말씀을 토대로,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 내용을 추가로 설명하고 교훈도 전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벌써 잠이 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빠는 행복합니다. 아들과 성경 말씀을 가운데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면서 아빠의 말을 귀담아듣는 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서현아, 이제 기도하고 예배를 마치자.”
말씀을 다 전한 아빠는 아들에게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마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근데, 아들 녀석의 갑작스러운 말이 아빠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아빠, 근데 나 똥이 마려운데, 똥 누고 나서 기도하면 안 돼요? 저 급해요.”
“뭐, 똥이 마려워? 급해?”
제 말이 마저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벌써 변기통 위에 앉아 있네요. 아내는 제 옆에 쓰러져 자고, 아들은 똥 누러 화장실에 가 버리고, 저만 덩그러니 탁자 앞에 앉아 있네요. 경건해야 할 가정 예배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이럴 때 다른 가정은 어떻게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