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가진 죄

유아 일기장 11

by 박준택


파란 하늘이 펼쳐진,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집안에만 갇혀서 어미랑 아웅다웅하며 지내던 이슬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모처럼 놀이터에 나갔습니다. 거기에는 이슬이 또래의 사내 녀석을 업은 할머니와 그보다 작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오신 할머니 두 분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아휴, 왜 다 큰 녀석을 업고 나오셨어요? 허리 안 아프세요?”

제가 은근슬쩍 말을 붙이자, 대뜸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안 아파? 허리고 나발이고 안 아픈 데가 있어야지.”

할머니는 그러면서도 아이가 귀여운지 포대기를 풀지 않고 계속 업고 계십니다.


“할머니 친손주예요?”

“아니, 다 쓸 데 먹을 거 없는 외손주지.”

“왜요, 외손주는 손주 아닌가요, 뭐!”

제 말에 할머니는 씩 웃기만 하십니다. 옆에 계신 할머니도 외손주를 보고 계신다는군요.


“친손주는 없으세요?”

“있지. 저희 외할머니가 봐주지.”

“아, 네......”

이 아파트에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시는 다른 할머니들도 대부분 외할머니라고 하시는군요.




“애고고, 자식 키워도 다 헛것입디다. 저희 키우느라 껍데기밖에 안 남았는데, 내가 올해 일흔이야. 내 자식 다섯에 이 애까지 합해 손주 다섯을 키웠어.”

“그래도 따님이 용돈은 많이 주시지 않나요?”

“많이 주지.”

“아유, 그 돈 다 어디에 쓰세요?”

“돈 쓸 새도 없어요. 어디 내가 시간이 있나? 모태 놨다가 저희 필요할 때 풀지 뭐.”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도 한 말씀 거듭니다.

“딸년들이 아등바등 살겠다고 나가서 일하니까, 우리 늙은이들이 쪼끔 보태려고 아이들 돌보는 거지 뭐. 우리 새끼니까. 요새 혼자 벌어서는 살기 힘들지.”

“아 글쎄, 이 애 어미는 저희 밥 먹으러 간다, 영화 보러 간다고 노상 나한테 애를 맡겨요. 저녁에는 데리고 가서 자지, 항상 우리 집에 놔두고 가니까 내가 낮이고 밤이고 이 녀석하고 전쟁이라오.”

두 할머니가 서로 자기 딸이 더 못되었다고 설전을 벌이시네요.


“근데, 따님들한테 다른 데 맡기라고 하지, 왜 힘들게 할머니들이 계속 보시는 거예요? 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겨도 되겠네요.”

“딸 가진 죄지 뭐. 우리 새끼 어디 우리만큼 안심하고 맡길 데가 있나? 그리고 힘들더라도 내가 봐야지. 슬슬 놀면서 보니까 괜찮아. 자식들도 다 힘들지, 저녁 늦게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데 뭐.”

“그럼!”

옆에 계신 할머니도 바로 맞장구를 치십니다. 조금 전에만 해도 따님들을 못되었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서로 따님들 감싸기에 열을 올리십니다.




두 분의 대화를 듣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만치서 야쿠르트 아줌마가 오기에 야쿠르트 네 병을 사서 두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이거 두 분이 드시고 애들도 주세요.”

“아유, 왜 이래. 아기 엄마, 고마워요.”


평생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자식들 키우시고 이제 편히 쉴 때도 되셨건만, 자식들 뒷바라지에 그 고생이 끝이 없습니다. 노령에도 손주 녀석까지 돌보고 계신, 장하신 어머님들이 저를 울립니다.


딸 가진 게 죄 아닙니다. 평생 애프터-서비스만 해 주느라 김치 담가 주고 애 봐주고 사위와 딸 눈치 보시는 할머니들. 깊게 파인 주름과 다 터지고 갈라진 손 덕분에, 이 땅의 아이 가진 엄마들이 이 시간에도 일터에 나가서 힘차게 일하겠지요.


저도 이제 긴 휴가를 마치고 조만간 일터로 복귀합니다. 우리 이슬이 외할머니도 놀이터에서 손주를 봐주느라 다른 할머니들이랑 딸년 욕하고 또 감싸기를 되풀이하면서 그렇게 늙어 가시겠지요.


오늘 엄마에게 전화해서 함께 칼국숫집에라도 가야겠어요. 왠지 저의 가슴이 파란 가을 하늘보다 더 파랗게 물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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