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일기장 12
이슬이는 전철 타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전철을 타면 반드시 창밖을 보려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의자에 올라섭니다.
“이슬아, 신발 벗어! 다른 사람들이 이슬이 때문에 의자 더러워서 못 앉잖아.”
“알았어, 엄마~”
아주 흥에 겨워 노래로 답하는군요.
다음 정거장에서 한 외국인이 탔습니다. 저희 옆자리에 앉았는데, 이 외국인이 이슬이 보고 귀엽다고 “안녕!” 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이슬이는, “호랑이가 ‘어흥~’ 한다.” 하면서 손톱을 세워 가며 그 파란 눈의 신사에게 화답합니다.
“한국말 할 줄 아세요?”
“네, 조금 할 줄 압니다.”
“한국의 옛날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할머니와 호랑이가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네,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도 호랑이가 자주 나옵니다.”
“그래요?”
그러면서 그 벽안(碧眼)의 신사와 무려 30분 동안 한국에 대한 인상과 호감, 그리고 다녀 본 도시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영국인인데 한국말을 참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아이가 참 귀엽군요. 저도 다섯 살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이 아이를 보니까 갑자기 딸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면서 얼굴 가득 미소를 띱니다.
“너 이름 뭐니?”
“떠현이. 너 이름 뭐니?”
“마이클. 너 귀엽다.”
“너 귀엽다.”
“떠현이, 몇 살이니?”
“네 살. 너 몇 살이니?”
이렇게 그 아저씨랑 서현이가 계속 이야기를 하고 가니까, 주위 사람들이 저희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줄 알고 계속 저희만 쳐다봅니다.
그 외국인이 내릴 곳에 다 왔는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러자 이슬이가 “어흥!” 하면서 손톱을 세워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 외국인도 손톱을 세워 “어흥!” 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마치 무슨 암호를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특별한 만남에 아무 불편 없이 적응하는 이슬이의 모습에 저도 놀랐습니다. 그리고 낯설고 물선 땅에 와서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을 그 외국인을 생각하니 덩달아서 저도 기분이 좋아졌고요.
괜히 외국인이 가까이만 다가와도 긴장이 되고 뭐 하나라도 물어보면 어쩌나 조마조마하였는데, 너무나 용감한 이슬이 녀석 덕분에 졸지에 전철 안에서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내리는, 기막힌 경험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