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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an 22. 2016

안녕

그 흔한 이별을 한번도 겪어 본적 없었다. 초등생 시절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이사오며 친구들에게 연락하겠노라 손가락 걸고 이별한게 내 기억 중 가장 슬픈 안녕이다. 울며불며 편지를 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받아낸 후 손을 놓아주었던 기억이다.

애완견도 키워본적 없어 애지중지 키운 감정체가 사라진다는 건 영화, 책, 꿈속에서나 간접적으로 경험해본게 전부였다.(햄스터가 서로를 잡아 먹었던 것, 주인을 대신해 두 달 돌보아준 토끼와 강아지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간 것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가벼운 안녕에도 적잖은 공허함을 느꼈다. 학창시절 하굣길에 버스타는 친구를 정거장에 바래다줄 때면 내가 먼저 등을 보이고 인사하는게 우리끼리의 규칙이었다. 친구는 나를 먼저 보내고 버스를 탈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신호등에서 헤어지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파란불 신호에 내가 먼저 신호등을 건너가거나, 나를 보내고 친구는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뀔때까지 혼자 기다리게 했다.


나는 이렇게 미숙했다. 이별도 없었고, 사랑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미숙한 채 사랑을 알아갈 때쯤 나보다 훨씬 성숙한 이별을 맞이했다.


지난 봄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안녕을 맞이하는 과정 가운데에 있었지만 난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세상과의 운명에 순응할 때도 그건 당신의 이야기라며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내 이별규칙 매뉴얼에 당신의 등을 마주하는 건 없었다.


몇 번의 이별을 겪어야 하며, 웃으며 안녕할 줄 아는 것이 어른이라면, 나는 여기서 머무르려 한다. 그 아릿한 공허함을 나는 모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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