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아빠의 횡성 살이 이야기(지만 인생살이 이야기도 첨가된)
<횡성의 하늘. 210717>
우리 아빠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다시 부산에 내려와 결혼해서 나와 오빠를 키우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내 뒷바라지를 했다.
편의시설 잘 갖춰진 대도시 간 이동이라고는 하나, 매 인생그래프 분기마다 달라지는 보금자리는 아빠에게도 스트레스가 아닐 리 없었다.
사실 내가 태어난 뒤로 아빠랑 떨어져서 산 기간은 그리 오래지 않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아빠는 서울로 향했다.
광고 일을 하던 아빠에게는 더 나은 자리였고, 특히 수중에 들어오는 자본이 더 나은 조건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내가 기숙사 생활을 했었던 지라, 친구들과 북적북적 살기 바빴던 중 아빠의 빈자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고3 시절, 치열한 경쟁에 치이던 때, 아빠가 보고 싶어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아빠는 Lenka의 The show 노래를 들으라며, 인생은 언제나 미로 속에 있는데 그 과정을 즐기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상투적이었지만 우리 아빠한테 받았던 문자라서,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나도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 모두 서울에 모여 살게 되었다.
<우리 아빠 낙서. 191102>
아빠가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힌 날은 오빠가 수능을 친 저녁이었다.
죽상이 된 오빠를 끌고 외식하러 갔었는데, 아빠는 원래라면 다 같이 밥 먹으며 ‘화기애애’ 할 때 자신의 은퇴 발표를 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색하게 화목한 분위기 속에 은퇴 발표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물속에 가라앉은 종이처럼’ 흐지부지 되었다.
그리고 죄송하게도 나는 어느 정도 안도를 했다.
난 분명 아빠를 사랑하는데… 왜 아빠의 결정을 응원하지 못할까… 죄책감이 들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고등학생 때 아빠가 서울로 떠나버린 것보다 더 큰 빈자리를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공간적 부재, 실체의 부재보다 숫자로 찍힌 것들의 부재가 무서웠다. 나 정말 한심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아빠도 아니었다. 우리 아빠도 한다면 하는 성격 급한,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빠는 은퇴했고, 숫자는 상관없는 게임이 되었다.
같이 오만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빠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하고,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다.
그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해 이야기하던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연인’이었다.
나는 모든 아빠들이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니까, 실제로는 일어날 리 없는 무언가 이상향 같은 삶의 이미지를 그리는 거라고.
아빠는 언젠가 모든 속세를 끊고,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살 거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짧은 글에서 아빠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듯이, 또 아빠가 해냈다.
아빠는 횡성으로 내려왔다.
가기 전 날, 아빠조차도 자신이 결정한 사안에 조금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빠는 잘 지내고 있다.
참 이상적인 사람이라 블로그에 매일매일 일기도 쓰고, 서울서 축적해왔던 뱃살도 대폭 없애버렸다.
나는 아빠 일거리를 도우러 횡성에 잠시 들러 이틀 밤을 자고 가기로 했다.
오늘도 내려와 일 돕는단 핑계로 방에 누워 몇 자 아빠에 대해서 적고 있다.
지금 나를 둘러싼 이 시원한 밤공기는 서울에선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저번에 내려왔을 때는 아빠가 정말 오랜만의 야식으로 치킨을 시켰다. 나를 위해서였다.
먹을 땐 실컷 먹었는데, 먹고 나서는 아빠가 은퇴한다는 소식에 내 걱정부터 앞섰던 내가 연상됐다.
아빠는 뭐가 그리 내가 예뻐서 해주려고만 할까.
언제나 나는 아빠가 진심으로 원하던 것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였을 것인데 말이다.
서울에서의 위로 메시지, 은퇴의 연기, 횡성에서의 치킨 모두 모두 똑같은 의미로 나에게 크게 다가온다.
아빠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계속해서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감사하게 다가온다.
아빠는 자기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아빠가 추천해준 Lenka의 The show 노래는 어쩌면 자신 스스로 위로받았던 노래일 것이다.
내가 지나치고, 마주치고,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빠만큼 긴 긴 미로를 즐기며 걷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빠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고, 횡성은 그런 아빠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미로 속 쉼터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는 딸내미지만, 이번만큼은 아빠를 진심으로 응원해볼까 싶다.
아, 그렇지만 오늘 도착하자마자 아빠한테 짜증 낸 것도 사실이다…
아, 그리고 오늘 밤도 아빠가 치킨 시켜준다고 했다…
아빠가 이런 존재로 있는 게 나한테 너무 관성처럼 편하게 스며들어 있나 보다.
어찌 됐든, 우리 아빠. 이제 횡성에 살게 됐다!
나도 아빠처럼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