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못 차리게 빠른 변화 속에서 오히려 꾸준함이 중요해지고 있는 역설
6년 전, 포르투갈 한 달 살기 할 적에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브랜드를 알 수 없는, 당시에도 아주 저화질이었던 캠코더 한 대와 함께 그렇게 많이들 하는 외국 생활 브이로그를 찍어보려고 했었다. 그때 올렸던 3개의 실험작들은 지금은 비공개 영상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 외에도 인스타그램에 어디서 본 포스터나 아트웍 스타일의 포토샵 작업물과 글을 같이 올리는 계정을 열었다. 꽤 여러 장의 게시물을 업로드 했더랬다. 다만, 그에 들어가는 공수가 너무 크다 보니 슬슬 손을 놓게 되었고, 누가 봐도 손을 놓은 지 오래된 계정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다.
두 계정 모두 물리적인 공간으로 존재했다면, 당연하게 거미줄 그득 쳐져 있는 폐가 정도가 되었지 않을까 싶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요새 사람'들은 전부 다 염탐용 계정 포함해서 각자 집이 2채 이상씩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디지털 세상 속에서의 내 집 마련은 숨 쉬기만큼 쉬워서 여러 채를 갖다가도 그 존재조차 까먹을 때가 많다.
그러나 본디 집이라는 공간은 가꾸고 애정이 들어갈수록-. 그 전통적인 '구수한 밥 냄새와 따뜻한 온정이 느껴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텅 비어있는 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계정은 차가압~게 식어 있을 뿐이다.
현생은 참 바쁘다. 눈 뜨고 보니 아직 내 윗사람들한테는 아기 같은 나이지만, 또 객관적으로 마냥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보니 왜 이렇게 챙길 것은 부단히도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노예로서 돈을 한 달이라도 쉬게 되면 목을 옭아매는 일이 발생했다. 제일 웃긴 점은 웰빙, 그 말 뜻 그대로 'Well-Being', 잘 있는 것조차 노력해야 영위할 수 있는 것임을 점차 체감해가고 있다.
그 와중에 AI로 인해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고-, 재테크는 나만 안 하고 있는 것 같고-, 해외여행도 안 하면 늙어서 추억할 수 있는 거리가 없어진다는-, 이 모오든 비교들이 저조차도 조급하게 앞다투어 내 목을 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만가지 일들을 벌리고 있다. 당연히 나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부업과 사이드 프로젝트에 미쳐있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일을 벌이는 데 비해 Well-being 하지 못하고 있다. 휘발성이 극도로 강해졌다. 어떤 일이든 쉬워졌기 때문인지 신경 쓰지 않는 데 선수가 됐다. 그래, 이 세 문장은 모두 동일한 뜻을 갖게 된다.
모든 젊은이들을 싸잡아다 얘기하는 이유는 어쩌면 알량한 자기변명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냥 급류에 쓸려버린 몸 하나라고 얘기하고 싶을 수도. 그 비겁함을 뚫고 얘기해 본다. 나는 참 내 삶에 다정하지 못하고 무신경한 사람이 되었다.
유튜브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서점에서 우물쭈물 휴대폰으로 영상을 7초 정도 찍었다. 피사체는 한 구역을 다 차지하고 있던 26년도 '마시멜로 이야기' 개정판이었다. 저자는 호아킴 데 파사다. 처음으로 외국인 이름을 풀로 외우게 해 줬던 책이다.
미동 없이 찐따처럼 책 표지만을 영상에 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인내하는 게 중요한 가치라고 많이 들었는데, 막상 지금 인내하고 있는 건 뭔가 싶었다. 그냥 리스크 갖기 싫어서 회피용으로 인내하는 것들 외에 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회피용 인내는 삶을 연명하는데 필요해서 '참고' 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겠고, 보상용 인내는 하고 났을 때의 정신적인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것들이 될 것이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지만 분명 가슴으로는 명확히 구분되는 완벽한 기준점이다. 보상용 인내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다.
29살, 또 쌩퇴사를 하고서 생각해 봤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지. 일단 당연히 살아있긴 해야 하니까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할 셈이었고, 정신적인 보상이 어떤 것일지 돌이켜 보았다. 그러니까 생각난 것은 난 항상 '중고등학생 때 혼자 다니던 것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평생을 찐따 기질을 갖고 살았다 보니 혼자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병이 있다. 그게 충족이 안되면 또 병이 난다. 어느 순간 눈 떠보니 무언가에, 누군가에 자아의탁 하며 살고 있었다. 그게 아무래도 나한테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무신경한 습관'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나에게 정신적인 보상은 '혼자 살 수 있는 생태계를 꾸리는 것'이다. 어렵긴 하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 장을 보고 간단하게 요리를 해 먹고 운동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기초적인 것부터 바꿔보면, 자연스럽게 혼자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신경 쓰는 삶을 시작하면서 Well-being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언젠가 백만 명 구독자를 누리려는 뭐 그런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내 계급을 비교하지 않고, 6년 전 낭만만 그득했던 타지에서의 나를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그때도 마냥 꿈같은 예술가 기질로 유튜브를 열었던 것처럼, 나를 비웃을만한 사람들에게는 조용히 하고 그냥 혼자 결심해서 벌써 영상 두 편을 완료했다.
6년 전과 달라진 점은 공수를 안 들이고 오래 디지털 공간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 이제 이 세상에서 시작은 반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시작하는 사람들의 수는 전세계 인구수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과 속도대로 꾸준히, 그리고 조용히 나를 가꿔가야 한다. 누가 알겠나? 눈 떠보니 ‘나 혼자’ 건강한 정신으로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브이로그를 할 수 있을지. 물론 극도의 농담이다. 번역한 것 아님. 나 한국인임.
핑계고였나 유퀴즈였나. 가만히 유재석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구나!"하고 나만의 유레카를 외쳤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X맨을 보고 자란 터라 항상 중심에 있던 그의 모습만 보긴 했지만서도, 왠지 그는 1등이라는 성적표보다 꾸준히 일하는 성질이 더욱 돋보인다. 어쩌면 대중선호도라는 애매모호한 지표로 순위가 매겨지는 성적표라 눈이 안 가는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숫자와 성과가 아닐뿐더러, 실제 숫자에서는 온갖 스토리가 담기지 못하기도 한다.
뭐 이런저런 애매한 불순물을 차치하고서 뚜렷하게 현상을 직시하자면, 사실 프리랜서 세계에서 꾸준히 자기를 갈고 닦은 사람임은 무결점의 사실이다. 이름 모를 수많은 꾸준함들을 대표하는 격 즈음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간에 결국 꾸준함이 보여주는 항로는 성적보다는, 딴딴한 생활습관이라는 것. 꾸준히 밥을 낋여오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1주에 한 편씩 예약 걸어놓을 수 있는 그 생활습관이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다. 희망적으로 고려하자면 성적표에 적힌 등급이 올라갈 확률 또한 회피용 인내 & 시작만 한 사람들보다 높을 것이다. 뭐~, 이건 아니면 말고 아닌가.
돈 모아야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것도 내가 생각하는 박스 안에서 열심히 해볼 테니까. 그냥 나는 나한테 스스로 주는 마시멜로 정말 많이 먹으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년, 내후년에는 진짜 멋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듯하다.
어렵게 어렵게 말했다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 갈 거라고 생각한다. 무신경하게 삶에 있어서 단타만 치면서 빠지지 말자. 그래도 이왕 태어난 거 장투 해야지. 책도 읽고, 하고 싶은 거 찾으려고 꾸준히 노력도 해보고 하면 진짜 그런 생활습관이 주는 정복감은 말로 표현 못한다. 그게 진짜 내 삶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지 않나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어른들이 말했던 인생은 마라톤이다 뭐다, 역시 틀린 말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