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YOUR CART 4: 권혜림님
IN YOUR CART는 팀 렛잇비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온라인 장바구니를 살펴보는 본격 취향 탐구 인터뷰 코너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욕망과 감각이 담긴 위시리스트가 궁금합니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영화를 사랑하는 직업인 권혜림님입니다.
이름: 권혜림
직업: 영화 홍보인 (쇼박스 PR Assistant Manager)
본인의 커리어를 소개해달라.
영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약 8년 간 영화 및 영화산업을 취재했다. 영화, 그리고 영화인들에게 점점 애정이 커졌지만, 내가 '영화' 기자인지, 영화 '기자’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종종 찾아왔다. 이대로 괜찮을까, 생각하다 투자배급사 홍보로 이직을 하게 됐다. 기자에서 홍보인으로 전직을 하는 일은 의외로 흔하지만, 남 일일 땐 무던하게 다가왔던 것이 내 일이 되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이직 만 6개월이 지났다. 선후배로 지냈던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때?'인데, 정말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물음이다. 나는 매일 뭔가를 새로이 배우고 메모하며 보내고 있다고 답한다.
영화 기자로는 관찰자이자 비평가 역할을 했을 텐데, 이제 영화 투자배급사 소속으로 인하우스 홍보를 한다. 같은 영화의 세계에서 일의 경험은 어떻게 다른가? 또 연결되는 지점은?
모든 영화가 훌륭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영화에도 하나씩의 미덕은 있다고 믿는다. 기자 시절에도 나쁜 의도, 나쁜 과정을 거쳐 만든 영화가 아니라면 최대한 좋은 면을 보려 했었다. 홍보 담당자가 되고 나니 좋은 면을 보려는 노력은 일상이 됐다. 영화 홍보는 비평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또 분해하고, 재정립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부분을 가장 보여주고 싶은지, 어떻게 유혹하고 싶은지를 찾아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물론 개인의 취향과 썩 잘 맞는 영화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취' 영화는 관객으로서 즐기면 되니까.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영화 개봉을 기준으로 업무 사이클이 돌아가기 때문에 일과가 늘 같을 순 없다. 영화 행사(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 인터뷰 등)가 있는 날에는 종일 현장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의견을 듣는다. 행사를 앞두고는 우리 영화에서 가장 주력해 소개하고 싶은 내용들을 정리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지난 주말에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가서 하루 종일 릴레이 미팅을 했다.
특별히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오자마자 홍보를 맡았던 <미성년>. 입사했을 당시 이미 대부분의 플랜이 짜여진 상태라 나는 '체험판'처럼 따라다닌 셈이긴 하다. 시사실에서 이 영화를 보고는 “이 영화가 내 첫 홍보작이 된다는 게 뭉클하다”고 말했었다. 영화가 너무 애틋하고 시려서, 아마 몇 년 간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혹시 아직 못 보셨다면 VOD로라도 꼭 보시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국내외 영화 작품을 두세 개 꼽아 준다면?
최근작 중에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 기자 일을 하던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봤던 영화다. 인물을 향해 영화가 취하는 시선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조심스럽지만, 시대를 바라보는 온도는 어딘지 냉철해 인상적이었다. 외화 중에는 <허공에의 질주>(감독 시드니 루멧)를 가장 좋아한다. 모두가 꾸준히 성장해야만 하는 세상은 그리 멋지지 않은데, 어쨌든 그 힘든 일을 해내는 이야기를 볼 때 어느 때보다 감동을 받게 된다.
당신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영감을 준 배우는 누구인가?
사실 좋아하는 배우들은 너무 많다. 한 명만 꼽기는 너무 어렵고, 나이를 떠나 나와 비슷한 시기 일을 시작했거나 아니면 정말 나이대가 비슷한 또래 배우들로부터 유독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자극을 받길 원해서였을 것이다. 기자 일을 하고 처음 취재한 영화가 '은교'였는데, 7년 전인데도 그때 만난 배우 김고은과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말씨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인터뷰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을 정도다. 영화뿐 아니라 음악이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까지 즐거웠다. 당시 인터뷰에서 좋아한다고 말했던 이소라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최근 '비긴 어게인 3'에서 부르는 걸 봤는데, 너무 뭉클해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1년 차 기자였고, 그녀도 신인이었던 그때가 떠올라서. 이후로도 쭉 응원한다. 조금 부끄럽지만 종종 친구들로부터 '고은맘'이라 불린다.
극장에 얼마나 자주 가는지?
기자 일을 할 때에는 일과시간 외에 극장을 가는 게 쉽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영화를 이미 업무 시간에 시사를 통해, 혹은 영화제에서 관람하기 때문에 따로 극장에 가서 볼 영화가 많지 않아서였다. 홍보 일을 하게 되면 퇴근 후 극장에 더 자주 가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피로와 싸우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의외로 놓치는 영화가 많아 분발이 필요한 상태다.
최근에는 홍보를 할 수 있는 뉴미디어 플랫폼, 콘텐츠 씬이 다양해졌다.
포털사이트와 함께 진행하는 토크 행사들을 비롯해, SNS 플랫폼을 활용한 콘텐츠들도 많다. 영상 콘텐츠 씬의 흐름은 너무 빨라 놀라울 정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수용자들의 모습이다. 이런 콘텐츠들에 대한 수용자들의 반응을 주시하는 것은 예비 관객들의 관심사와 기호를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물건이 있나?
프라이탁 가방 무겁지만 방수가 된다. 랩탑도 들어갈 정도로 크지만 예쁘기까지 하다. 지난 10년간 프라이탁 가방들은 늘 나와 함께였다.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리랜드. 타프와 벨트 등 재활용 자재를 사용하는 대표적 리사이클 브랜드로, 은근히 여러 옷차림에 어울린다.
묵주반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 친구들 여럿이 돈을 모아 선물해준 반지를 아직도 잘 끼고 있다. 몇 번 잃어버릴 위기가 있었지만 다시 잘 돌아왔다. 친구들은 내 눈을 가리고 손가락에 실을 묶더니 영화 <스텝맘>(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의 줄리아 로버츠가 청혼을 받는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줬다.
명함지갑 칸 국제영화제 기념품샵에서 구입한 명함지갑. 가본 사람이라면 깐느의 정취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공기가 담겨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모델이다.
영화 보는 것 외에 일상적인 취미, 혹은 특별한 취미가 있다면?
운동을 좋아한다. 한창 열심히 할 때는 하루라도 근육통이 없으면, 혹은 운동을 다녀왔는데도 몸에 아무 자극이 없으면 마음이 시원찮곤 했다. 이직 후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운동이 뒷전이 되어 반성 중이다. 그 외에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일의 특성상 바쁠 때 확 바쁘고 아닐 때 급히 여유가 찾아오는 편인데, 일 부담이 덜할 땐 훌쩍 떠난다. 퇴사와 입사 사이 한 달간 발리 여행을 다녀왔는데, 늘 일정을 파악하고 커버해야 하는 일을 하다가 무계획 일상을 보내니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그날 잘 곳을 바로 전날 예약하고, 오늘 무엇을 할지 아침에야 가만히 생각하는 그런 게으른 여행이 아주 큰 리프레시가 됐다.
영화라는 취미, 취향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한 마디.
물건이든 옷이든 한 번 구입하면 오래 쓰는 편이다. 옷장엔 중학생 시절 샀던 카디건이나 손수건, 패딩 점퍼가 아직도 있다. 유행을 타는 옷이나 소품은 잘 구입하지 않는다. 반면 영화에 대해서는 생각이 아주 다르다.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영화를 비롯해 문학, 음악 등 많은 예술 작품들의 시대성이다. 과거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았던 영화들, 혹은 시나 소설들을 자주 돌아보며 그것의 메시지가, 그것에 대한 나의 호감이 아직도 유효한지 자문한다. 10여 년 전 그토록 사랑했던 어느 영화를 다시 보다가, 그땐 미처 몰랐던 작품 안의 비도덕성을 발견하고 일순간 스스로에게 민망해진 경험은 꽤 많은 이들에게 있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들을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한다. “영원한 명작도, 영원한 망작도 없다”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