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일
여섯 살 아래 여동생이 있습니다. 세발자전거 뒤에 동생을 앉히고 골목 어귀까지 나갔다가 들어오면 동생은 뒤에서 잠이 들어 있습니다. 겨우 2-3살 정도였을 겁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엔 그렇게 어린 동생을 밖에 데리고 나가서 노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동생을 재우기 위한 나만의 비법이었기 때문에 몇 차례나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누나들은 학교에서 안 왔고, 엄마와 아버지도 집에 안 계셨기에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기였던 동생은 당연히 기억이 없겠지요. ㅎㅎ
제가 20살이 되었습니다. 태어나기만 했지 기억에 없는 고향에 벌초를 갔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하면서 아들인 저를 소개합니다. "아! 얘가 이렇게나 컸어?" 담장에서 요렇게 쳐다보고 있을 때 "이놈 고추 따먹자~"하면 냅다 도망쳤다고 저를 기억하고 계시네요. 내가 모르는 일을 말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나'인가? '기억'하기 때문에 '나'인가? '기억'이 없는 '나'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면 이 세상 일을 기억할까? 기억을 못 하면 천국에 있는 '나'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천국에서 '기억'되는 세상 속의 '나'는 '기억'속에 있는 '나'만을 아는 것일까? '기억'밖의 '나'도 알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리신 분은 어느 날 기억이 사라지고,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데 그럼 그분은 '존재'하는 것인가 '사라진' 것인가? …… 철학(哲學)이 필요합니다. ㅎㅎ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 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 1장 5절)" 하나님은 내가 모르는 '내 기억 속의 나'를 뛰어넘어 태에서 조성되기 전에 이미 나를 '안다'고 하시니 '존재'의 판단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139:1-4)"
어느 날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내 기억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더라도 나를 기억하고 붙들고 계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지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가 기억해 주고 마음껏 추억합시다. ^^ 그분이 아시고, 그분이 잡고 계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