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운동장 축구골대를 부여잡고 학생 한 명이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체육 선생님 묻습니다.
"쟤 왜 저래?"
"아무개가 쟤 바지를 벗기고 도망갔는데......"
"그런데?"
"쫓아가서 잡으려는데 잡을 수가 없으니까 억울해서 그래요!"
"쟤네들 '로미오와 줄리엣'이냐? ㅋㅋ"
그래서 그날 이후 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 아무개는 잡혀서 몇 대 맞아 주는 것이 도리(道理)입니다.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돌면서 잡혀주지 않았으니 그 학생의 억울함은 나라 잃은 서러움만 못할까요? 축구골대를 부여잡고 눈물이라도 흘려야 맺힌 감정이 일정 부분 해소 되었을 것입니다. 연인이 서로 싸우다가 남자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며 "미워! 미워!" 하면 받아주는 것이 또한 도리지요. '니가 다섯 대 때렸으니까 너도 맞아봐'할 남자는 없습니다.
독보적인 것처럼 외로운 것도 없습니다. 경쟁자가 없으면 함께하는 자도 없는 것이지요. 예전엔 어린 동생을 놀이에 끼워주기 위해 '깍두기'란 제도를 만들어서 함께 놀았습니다. 동생은 사뭇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지만 점수에는 반영 안 되는 것이 '깍두기'입니다. 모르는척하고 놀이에 끼워주는 것이죠. 잡혀주고, 맞아주고, 끼워주고, 모르는척해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할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도리(道理)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 '어떤 일을 해 나갈 방도(方道)'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정해진 틀에서 오차 없이 일을 수행하는 것이 '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리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바른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제게 늘 하던 말이 "그래도 니가 할 도리는 해라!"였습니다.
"나 진짜 저 사람 싫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니 할 도리는 하는 거야!"
'도리'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도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바른 모양새'를 말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어떻든 내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자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3자 시점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불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5살 때 엄마가 '다른 집에 가서 다리를 펴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말에 그 '도리'를 지키느라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놈의 '도리'가 뭔지.....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사는 것은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지가 벗겨져 따라오는 친구에게 잡혀주는 불편함도 있어야겠고, 게임 중간에 깍두기 동생 때문에 느려지는 답답함도 견뎌야 하고,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 안부인사하는 감정조절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옛 마을을 지나며 (김남주)
찬 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까치를 위해 나무 끝에 홍시 하나 남겨두는 '자연에 대한 도리'도 지켜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