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싶었던 고모부
아이들로 북적대던 명절이 올핸 조용해졌습니다. 가장 어린 조카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그럴만합니다. 집안 어르신들도 이젠 모두 '좋은 곳'에 계시니, 집이 조용해진 것도 두 번째 이유가 됩니다. 몇 년이 지나 손주들이 올망졸망 뛰어다니며 재롱을 부리는 시간이 오기까지, 집안에 조용한 침묵기(?)가 있을 예정입니다. 추석 당일 하루, 처갓집에 다녀와서 줄곧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이렇게 긴 연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연휴기간 동안 아내와 수목원과 식물원을 섭렵하고, 근처 작은 소극장에서 '연의 편지'라는 애니메이션도 관람했습니다. '연애편지'가 아니라 '연의 편지'입니다. 잘못 봤네요. ㅠㅠ 로맨스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청춘영화 '우정과 용기'가 주제입니다. 아무튼 길고 긴 연휴를 이렇게 저렇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릴랙스 하게 보냈습니다.
우리 집 아파트 옆라인에 처남이 살고 있습니다. 아내 바로 위 오빠니 제겐 손위처남이 되겠지요. 함께 이웃해서 산지도 벌써 십수 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양쪽 집안에 어른이 모두 안 계시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의지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으니 한결 좋습니다.
예전 사진을 뒤적이다 재미있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어린 조카가 학교 과제로 제출한 이름표입니다. 아마 가족소개를 카드형태로 만들어 오라는 숙제였던 것 같습니다. 고모부는 물론 저를 말하겠지요. 별명은 '멋진쳑쟁이'고 특징이 '잔다'네요.
사실 명절에 처갓집에 가면 딱히 할 얘기도 없고, 어색하기 마련입니다. 아내가 고명딸이다 보니 모두 손위 처남인지라 만년 사위 같은 느낌입니다. 그때만 해도 조카 사내아이들이 축구팀을 만들 정도로 많았으니 뛰고 쫓고, 붙잡고 거실이 북적북적했습니다. 그런데 제 특징이 왜 '잔다'일까요? 하하. 소파구석에서 찌그러져 계속 잠자는 고모부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제가 제일 예뻐하는 조카딸의 작품입니다.
또 하나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 별명이 '멋진쳑쟁이'라고 느꼈을까요? 당시 조카가 초등학교 2학년정도 된 거 같은데, 늘 멋지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간파한 것일까요? 아이들 눈은 못 속이겠습니다. 여러 사람·사물 가운데서 뛰어나게 우뚝 선다는 출류발췌(出類拔萃)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누군가의 눈에 '멋지게 보이고 싶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지요.
명절의 북적임이 사라지고,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갑니다. 세월은 조용히 흘러도, 그 안에 스민 웃음 하나, 별명 하나가 오래 남습니다. '멋진 척쟁이'라 불리던 시절처럼, 오늘도 그렇게 조금은 멋지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