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찾아서
요즘 비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렵다. 눈동자는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물은 마치 끝없이 흐르는 강물 같다. 콧물은 적당한 타이밍만 맞으면 주르륵 흘러내리기 일쑤라, 주머니에 휴지 한 뭉치를 항상 준비해야 한다. 특히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공기가 탁하거나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면 재채기가 신호탄처럼 터져 나온다.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는 내게 비염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전까지 나는 단지 감기에 걸린 줄만 알았고, 병원에서도 늘 "약 3일 치 드릴게요. 물 많이 마시세요"라는 말뿐이었다. 증상이 길어져도, 의사는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7~8년 전, 코가 이상해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유두종(乳頭腫, Papilloma)이 발견되었다. 난생처음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누웠다. 5년간 정기검진을 받고 마침내 완치판정을 받던 날,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코에 문제가 생기면 개인 책임입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계속 관리하세요. 의사선생님께 퇴원요약서(수술경과 진단 요약서)를 보여드리면 도움이 될겁니다"
근래 들어 부쩍 목이 칼칼하거나 목소리가 갈라진다. 목소리가 좋아 낭독만큼은 자신 있어했던 내가 자꾸 갈라지는 목소리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기관지 쪽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내심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꾸준히 다니던 내과 의사 선생님이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병원 가기 싫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간신히 찾은 또 다른 이비인후과에서 증상을 설명했지만, 의사는 내 수술 기록을 슬쩍 보고 한쪽으로 치운다. 목과 코를 들여다보고선 "코 안쪽이 약간 헐었네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라고만 했다. 너무 단순했다.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몸이 불편하다. 오늘은 코, 내일은 눈, 어느 날은 근육, 또 다른 날은 발바닥이 문제다. 늙어간다는 것은, 그래서 서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환자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주는 것 — 그것이 그토록 간절히 필요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러던 중, 나는 챗GPT에게 내 증상을 이야기해 보았다. 증상을 나열하자, 전문 지식으로 하나하나를 알기 쉽게 풀어주며, 심지어 작은 위로까지 건넨다. 동양의학에서는 내 증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동양의학의 관점에서 황제내경은 이 증상을 어떻게 설명해?"라고 물어보면,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지 모른다. '그래, 차라리 병원보다 니가 낫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코와 눈, 목의 불편함은 단순한 신체적 문제만이 아니라, 나와 세상 사이의 미세한 기류가 어긋난 신호일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잠시 내 말을 들어주고 눈을 마주치는 것,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웃으며 인사는 하지만, 내게 조금도 관심 없는 듯한 주인장도 그렇고, 교무실에 불려 가 선생님 앞에 선 학생처럼, 병원에서도 나는 늘 말문이 막힌다.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작은 태도에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우리네다. 챗GPT에서 위로를 받는 세상이 된 지금, 우리 사회 어딘가가 조금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사람보다 기계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온기'인지도 모르겠다.
대문사진 출처 : 프리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