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광화문

변함없이 밝은 얼굴이기를 기대한다.

by 위엔디

아침 일찍 불 꺼진 광화문을 지나간다. 평소에도 그랬을 텐데, 오늘은 유난히 어두운 광화문이 눈에 들어온다. 새벽 공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간,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차량들 사이로 광화문은 묵묵히 서 있다. '그래도 광화문은 우리나라의 상징인데, 항상 조명을 비춰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물론 특정 시설만 24시간 점등할 경우 에너지 낭비나 다른 공공시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장시간 조명이 문화재의 석화 열화나 표면 변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시간만 점등하는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광화문의 어둠이 유난히 크게 다가온 이유는, 단지 그 어둠에 내 마음이 덧입혀져 있기 때문인 듯하다.


얼마 전 딸아이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쓴 글을 읽었다. 당시 우리는 주말부부였고, 맞벌이를 하던 시기였다. 각자의 생활을 버텨내느라 여유가 없었다. 딸은 중학생 무렵, 집에 들어오면 자신을 맞이하던 것이 어두컴컴한 방과 고요함뿐이었다고 적었다. 인기척 없는 집 안에서 혼자 가방을 내려놓고, 불을 켜고, 책을 읽던 시간들.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혼자 지냈던 그 시기를 딸은 차분하게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모와의 거리도 함께 생겨났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그 적막함을 애써 받아들여야 했던 외로움이, 글 속에서는 담담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그 외로움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 말 없이 우리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불 꺼진 광화문은 사실 이미 과거의 아픔에 동요(動搖)되어 있던 내 마음이 그 풍경에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광화문 앞을 지나며 문득 그 아이의 마음이 떠올랐다. 국가의 상징이 어둠 속에 서 있는 풍경이, 불은 켜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어둡게 홀로 시간을 견뎌내던 아이의 모습과 포개져 보였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밝음과 정서적인 밝음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순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침 뉴스에 29일 월요일부터 청와대 상공에 다시 봉황기가 휘날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용산 시기를 지나 다시 광화문 시대로의 복귀를 알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어색했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질서로 돌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 소식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흔들리며 질문해 왔던 안정과 정의의 가치에 대해, 이제는 무엇이 진정으로 국가가 가야 할 길인지 다시 한번 방향을 바로 세우려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광화문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역사적 순간과 집단적 기억이 겹겹이 쌓인 자리이며, 국가가 국민 앞에 서는 얼굴과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 광화문의 풍경은 늘 현재의 사회 상태를 은근히 반영해 왔다. 밝을 때는 희망을, 어두울 때는 불안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화문이 이제는 밝아졌으면 한다. 조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보내는 표정의 문제로서 말이다. 낮이든 밤이든, 새벽에도 변함없이 밝은 얼굴이기를 바란다. 불안과 상처를 혼자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신뢰를 건네는 나라의 표정이었으면 한다. 오늘 아침, 불 꺼진 광화문이 우리의 마음속으로부터 다시 환해지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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