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 신념

나는 백말띠가 아니었다?

by 위엔디

자랑스러웠다. 말띠 중에서 나는 '백말띠'였다. 66년 병오년에 태어난 우리 또래들이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너는 말 중에서 백말이야!"였다. 하얀 갈퀴를 휘날리며 멋지게 달리는 백마의 모습을 그리며 남모를 자부심이 대단했다. 해방 이후 베이비붐 세대로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58년 개띠'가 유명했던 것처럼, 66년 말띠도 '백말띠'로 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백말띠'는 기운이 세고 좋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오히려 여자는 '성격이 세고 가정을 깨뜨린다는'는 안 좋은 속설도 있었다. 그래도 나쁘게만 이야기 할 수 없었던지 동갑내기 결혼은 그나마 잘 살 수 있다는 위로도 곁들여졌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출처 : 공공누리 이미지]

올해는 병오년(丙午年)이다. 붉은 말의 해다. 병오년에 태어나 병오년이 되었으니, 환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붉은 말이지? 66년 병오년이 백말띠의 해였으면, 올해도 백말 아닌가? ' 뭔가 이상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병오년(1966년)은 실제로는 붉은 말의 해이지만, '백말띠'라는 오해가 생긴 배경에는 일본 민속의 '쿠로에우마(黒絵馬)'와 '고쇼쿠(五色馬)' 관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 개념은 말의 색깔에 길흉을 부여하는 일본식 민속 신앙으로,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에 유입되면서 '백말'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영향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면서 1966년생 말띠를 '백말띠'로 부르는 관습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과 동양오행 자료에 따르면 병오년(丙午年)은 오행 중 화(火)의 기운에 해당해 전통적으로는 '붉은 말'로 분류된다.


"이럴 수가! 뭐야! 나 백말띠 아니었어?"


그동안 비합리적 신념이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의심도 없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였던 것들이 사회 전체가 공유한 집단적 허구였던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은 1963년에 출간된 한나 아렌트의 저서이다. 독일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분석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큰 악은 아무 생각 없이 규칙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나야말로 수십 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것이 악해서가 아니라, 한 번도 '왜'라는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한길사) : 교보문고 이미지 캡춰

현시대의 정치·사회·문화에서 혼동된 가치와 잘못된 생각들이 어찌 보면 '생각하지 않는' 비합리적 신념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가짜 뉴스가 퍼지고,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팩트 뉴스가 생기고, 음모론과 팬덤 정치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각종 집회와 주장이 난무했던 지난해를 보내면서 올해만큼은 상식이 통하고 법과 정의가 바로 서는 균형 잡힌 사회를 꿈꿔 본다. 백말이냐 붉은 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남이 만든 이야기를 생각 없이 믿어 왔느냐의 문제였다. 올해만큼은 스스로 묻고 따지는 시민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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