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는 연습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현관문을 열어주니 단기사병이 우편물을 주고 갔다. '입영통지서' 한 장. 배달이 늦었다고 급히 가져왔단다. 두둥~~ 다음 주 입대하라는 영장이다. 감상에 적을 새도 없이, 학교로 달려가 군입대 휴학계를 내고 바로 입대가 이루어졌다. 당시엔 요즘 아이들처럼 부모가 바래다주고, 우쭈쭈 하며 달래주는 것이 없었다. 20대에 들어서면,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성인이라고 여겼고, 대부분의 것을 스스로 처리하던 때였다. 집 앞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살갑지 않은 아들 녀석이 안쓰러웠을텐데 이렇다 할 내색도 못하고 배웅하러 나오셨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갈 때 창 밖 엄마가 보인다. 빨갛게 충혈된 엄마의 눈을 애써 외면하고 강한 듯 그렇게 집을 떠났다.
아들이 입대하던 날, 논산훈련소 정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치감치 보면서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괜찮은 듯, 당당한 듯,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입대하는 아들의 모습이 더 안쓰럽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라고 얘기할수록 부모의 마음은 더 쓰리고 아파한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보니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 딸이 5살 정도 되었을 때,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포장이사로 짐은 이미 출발을 했고, 우리 가족만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딸에게 장난을 쳤다.
"하원아! 우리 너무 가난한 집으로 이사를 해야 됐어. 괜찮아?"
"응"
"집이 너무 안 좋아서 누우면 발도 집밖으로 나오고, 비도 새고 그런데 괜찮아?"
"응 괜찮아!"
"밤에 쥐가 막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괜찮겠어?"
"...... 응....... 괜... 찮... 아!"
딸이 최근에 아빠의 일기장을 보고, 학창 시절 사춘기 때 자기 고백을 아빠에게 보내는 답글 형식으로 글을 썼다.
외로움은 늘 곁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을 켜고,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노라면
세상이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자립의 시작이었지만
동시에 거리의 시작이기도 했다.
아픔을 감내하고, 외로움을 감추면서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던 딸의 마음이, 오히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
26년도 새해가 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내가 가구배치를 전부 다시 하잔다. 이틀 동안 진이 빠지도록 집안 정리하느라 잠시 멈췄던 비염이 재발했다.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아들방을 바꿔주겠다고 집안을 다 흔들어 놓았다. 집안정리를 하다가 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 보냈던 위문편지가 보인다. 어릴 때 썼던 육아일기를 다시 쓰고, 그 아래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첨부해서 보내는 형식이었다.
[ 육아일기 ] 태어난 지 3개월 차, ○○이가 어제부터 오래도록 서 있습니다. 어제는 숫자 20까지 세도록 서 있더니, 오늘은 25, 30, 35까지 서 있습니다. 유난히 오늘 컨디션이 좋은지 연일 깔깔대며 웃습니다. 아들이 빨리 커서 걷고 뛰어다는 모습이 기다려집니다. 우리 부부에게 딸과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도움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는 복된 만남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 위문편지 ] 성장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 일거고, 성장이 없다면 이미 죽었거나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이겠지... 하루가 지나고 해가 바뀔수록 자라고, 세어지고, 강해지는 아들을 바라보면 늘 자랑스럽다. 그렇게 힘이 세다고 여겼던 아빠의 아버지(할아버지)도 아빠 20살 즈음에 팔씨름을 할라치면 턱없이 약해진 아버지(할아버지)의 손목에 잠시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이도 벌써 아빠의 근력을 뛰어넘어 아빠의 약해진 팔목을 경험할 즈음, 나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하고 자주 생각해 보았다. 누나는 아직도 아빠가 어머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라고 여기는 듯...(ㅎㅎ) 어렸을 때는 비교가 안되었을 테니까... 우리 아들도 이제 많이 자랐고, 어엿한 군인의 모습으로 서게 되었다. 외롭고, 통제받고,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손가락에, 손목에, 팔뚝에 작은 근육이 붙고 힘이 자라듯, 18개월의 군대 생활이 세상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갖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카운트 업! 세어보자! 제대하기 위한 날짜가 아닌 강해지는 레벨값을.... 우리 아들 잘 자~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잘 자라고, 성장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늠름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부모의 공통된 기도제목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줄곧 기도해 온 것도 이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의미 있고, 행복하기를 바랐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그 바람은 유효하다. 말없이 뒤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고 하면서도 안쓰러움과 가슴절이를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인 것이다. 군대 가는 다 큰 아들,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던 엄마의 마음을 나도 이제야 알게 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떠나보내는 연습을 평생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