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怒)'는 줄이고 '즐거움(樂)'을 장착하며 살고 싶다.
중학교 졸업식 날, 교실 밖 복도에서 누나가 보였다.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야! 니네 누나 왔다!"
"어?"
'우리 누나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야! 너랑 똑 같이 생겼어!"
"......."
졸업앨범은 태고의 신비를 품고 있다. 어떤 변형도, 어떤 칼도 대지 않은 얼굴의 원형. 기록물로서 이보다 충실한 증거도 없다. 어릴수록 그 가치는 더하다. 중학생이었으니 유전자가 가장 왕성할 때였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 동근동원(同根同源) 아니겠는가. 하물며 두 살 터울이다. 한눈에 남매임을 알아볼 만했다.
이날의 경험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유년 시절의 또 다른 기억으로 이어진다. 국민학교 4학년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모델이 되어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하필 살색 크레용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색이라곤 주황색이었다. 여자선생님이라 그런지 화장한 얼굴이 그 색과 비슷해 보이긴 했다. 얼굴색이 이게 뭐냐고 핀잔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선생님이 꽤나 불쾌한 기색으로 다그친 기억이 난다. 얼굴의 약점을 풍자적으로 망가뜨려 그리는 캐리커쳐에 비할까? 웃음으로 넘길 만도 했을 텐데 말이다.
유쾌함은 상대방을 긴장감에서 풀어놓게 하는 힘이 있다. 적당한 유머는 가라앉은 공기를 위로 띄우는 효과를 가져온다. 헬스장의 진동 벨트는 경직된 근육을 풀어준다. 운동 전후의 혈류를 촉진시킨다. 생활 속의 유쾌함은 진동 마사지 벨트와 같다.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빤 왜 화가 나있어? 그냥 모르겠다고 하면 되는데...."
아들의 한 마디에 감정이 쭈우욱 가라앉는다.
'그렇지 굳이 화를 내듯이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사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분노 상태'로 하루를 맞이할 때가 많이 있다. 직장 내 스트레스가 심할 때 심리적 공격자세를 취한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가 아니라 손대자마자 코에서 하얀 연기가 분출한다. 5분 대기조 공격대기상태다. 상대방의 감정을 논리로 꺾지 않고, 온도를 낮추는 말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집의 분노조절 처방전은 '왜 화가 나있어?'이다. 저작권은 우리 아들에게 있다.
"엄만 왜 화가 나 있어?, 아빤 왜 화가 나 있어?, 성원아? 넌 왜 화가 나 있어?, 누난 왜 화가 나 있데?"
이상하게 상대방이 내 감정상태를 지적하면, 곧바로 김이 확 빠진다. 마치 라면 끓이는 냄비가 넘치려고 할 때 뚜껑을 살짝 젖히면 경쟁적으로 뛰쳐나오려는 수많은 거품이 사르르 밑으로 가라앉듯이 말이다. 흥분한 거래처 사장님이나 분노한 업체 사람들에게 "그런데 왜 화를 내시면서 말씀을 하세요?" 하면 "아니 제가 뭘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하면서 한 발 뒤로 빼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세상사 다양한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일반화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말이나 감정에도 속도를 늦추는 자기만의 노하우는 몇 개 갖고 있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졸업 시즌이다. 문득 나의 중학교 졸업식날이 떠오르다 보니, 또 과거로 가는 열차에 올라타 버렸다. 졸업하고 졸업하고, 또 졸업하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졸업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지만, 이제는 '화(怒)'는 줄이고 '즐거움(樂)'을 장착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