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했던 어른
이불을 두 겹 덮었다. 몸살이 걸린 건 아니다. 두꺼운 이불이 몸을 눌러줘야 하는데, 지금 덮고 있는 것은 두텁긴 해도 가벼운 느낌이 많이 난다. 이불속 온기가 들썩일 때마다 공기가 틈새로 빠져나가는 것이 영 신경이 쓰인다. 헬륨가스 가득 채운 풍선이 떠오르지 않게 묶어두려면, 내 팔의 작은 근육을 사용해야 하듯이, 이불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밤새 이불을 잡아채니 은연중 피로감이 쌓인다. 얼마 전, 아내에게 두꺼운 이불이 없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좋을 리 없다. 그리고 대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없어"
어제 이불장을 우연히 열었더니 오래된 두꺼운 이불이 보인다. '오~ 여기 있네!' 슬그머니 이불을 챙겨 침대로 가져왔다. 내 쪽으로만 두 겹을 만들어 놓고, 그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묵직했다. 조금 과하다 싶긴 해도 날아가려는 몸을 꼬옥 눌러주니 한결 편안하다.
...... (정지된 시간)
30분을 늦게 일어났다. 꿈도 안 꾸고 깊이 잠이 들었다. 새벽에 뒤척거림도 없이 숙면을 취했다. (사실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은 내 특기다) 몸이 한결 가볍다. 묵직한 이불이 제대로 효능을 발휘한 것이다.
이불도 그렇지만,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목덜미 뒤에 상표가 따끔거린다. 부드러운 재질의 천이라면 그런대로 괜찮다. 어떤 옷은 실밥의 매듭까지 피부를 자극한다. 결국, 가위로 상표를 잘라내고, 핀셋으로 남아있는 실밥도 풀어내기도 한다. (여름옷은 얇아서 가끔 뒷덜미 올이 풀리기도 한다) 피부자극에 예민하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연예인에게 '피부가 하얗고 뽀얗다'는 의미로 '우윳빛깔 누구누구'하며 연호를 받는 아이돌이라면 이해가 되겠지만, 나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극성 피부인 것이다. 반지, 시계, 목걸이 등 장신구를 싫어하는 것이 나름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아내가 주기적으로 보풀제거기를 이용해서 침대보에 까끌거리는 것을 없애고, 테이프 클리너(돌돌이)로 먼지 잡티를 없앤다. 내가 몸이 따갑다는 컴플레인을 자주 하는 탓일 게다. 아무튼 유난스럽다.
도형에서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90도가 안 되는 각은 예각이고, 넓고 둔탁하며 90도 밖으로 벌어진 각은 둔각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마치 예각처럼 날카롭다는 인상이 강하다.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고 경계할 대상인 것이다. 살다 보니 예민한 사람은 가까이에 친구두기가 어렵다. 작은 감정에도 상처 입기 쉽고,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쉽게 말을 건네기 어려워,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예민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예리한 사람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 의미를 찾아내고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예리함이 없으면 안 된다. 삶의 통찰은 사건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사유가 필요한 탓이다. 예민한 것이 상처 내기 쉽다면, 예리함은 잘 베어내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인 셈이다.
학생 운동가 출신으로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시작한 정치 인생으로, 한국 민주주의 성장을 함께해 온 핵심 인물로 평가되는 고(故) 이해찬총리는, 분명 우리 사회에 예리한 사람이었다.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했고, 대안을 제시했고, 정책과 공직에 끊임없이 참여하며 영향력을 유지한 지도자였다. 진보 성향 인사뿐 아니라 보수 성향 인사들조차 그의 오랜 공직과 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한 것은, 그를 우리가 살아가는 험한 시대의 어른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발인은 2026년 1월 31일 새벽, 사람들이 아직 잠든 시간에 치러진다. 영면(永眠)에 들어가시는 길에 두터운 이불 한 장 덮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