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비목이여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by 위엔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2023)는 닉슨·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70년대에 담임선생님은 당신이 키신저를 닮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키신저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 이름 하나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선생님 얼굴도 기억이 난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 선생님이다. 성악을 전공하셨기에, 쉬는 시간마다 칠판에 가곡을 적어 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하셨다.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교내 합창대회가 열렸다. 선생님이 심사위원이다. 선생님은 우리 반이 일등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쉬는 시간마다 합창연습을 시켰다. 4부 합창을 하기 위해 한 사람씩 일으켜 세워 노래를 부르게 하고, 아이들에게 바로 파트를 정해주셨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난 베이스였다.


당시 내 눈에 기이한 것은, 소프라노와 테너 쪽에는 으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공부를 잘하면 노래도 잘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어색함은, 언제나 그렇듯,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알토나 베이스가 노래를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나는 매번 자신감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작은 두상 탓에, 사진 속 나는 늘 초라해 보였다. 더 기이한 것은, 또래들 가운데 머리가 큰 아이들 대부분이 공부를 잘했다는 사실이다. 머리가 크면 똑똑한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깨달음의 끝에서도, 소외감은 역시 내 것이었다.


나는 달리기를 잘했다. 꿈은 육상선수거나 체조 선수였다. 그런데 운동을 못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공부를 잘했다. 노래를 잘하고, 머리가 크고, 운동을 못하면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노래도 못하고, 머리도 작고, 운동만 잘하는 나는 공부와는 처음부터 다른 쪽에 속해 있었던 걸까? 아~ 이름 모를 비목이여~~!


노래를 잘하면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크면 똑똑하고, 운동을 못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그럴듯한 공식들은 모두 그 교실에서 처음 배운 것이었다. 그 생각 어디에도 보편적 근거는 없다. 자기만의 규정이며, 그것은 역으로 자기를 구속하게 된다.


1971년,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트기 위해 키신저는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한다. 그 자리에서 중국 측 고위 인사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미국은 우리를 적으로 보는가, 파트너로 보는가?" 키신저는 즉답하지 않고 긴 침묵을 유지했고, 중국 측이 불편해질 정도의 침묵이 흐른 뒤,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적과는 대화하지 않습니다. 대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답입니다." 그는 말로 설득하기보다, 침묵과 구조로 상대를 이해시키는 인물이었다.


내가 어느 편에 속해 있었는지는 오래도록 나를 규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인생의 후반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보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나를 설명하기 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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