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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pr 24. 2024

십자가 옆에서

누가복음 23장 42~43절

  누가복음 23장 42~43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가 이야기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耶稣啊,你得国降临的时候,求你记念我!耶稣对他说:“我实在告诉你:今日你要同我在乐园里了。”


  그런데 NIV 성경에서는 "Then he said,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획득하거나 상속된다는"의미의 "come into"로 번역되어 있고, 한국어 개역개정 성경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럼 중국어는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라면 당연히 “你的国降临”라고 써야 하는데 어라?   "你得国降临"입니다. 중국어 주기도문에도 “愿你的国降临”이라고 표현된 것을 보더라도 어법상 "得"는 "的"의 오타인 것 같긴 한데, 영어처럼 "획득하다, 얻다, 상속받다"는 의미를 굳이 넣고 싶어서 獲得의 의미로서 "得"를 사용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성경 원문은 어떤 뜻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하하하...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같은 상황 속에서 한 명은 저주를 퍼붓고, 다른 한 명은 은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은혜를 구한 행악자의 믿음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버림받고 조롱당할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죄인의 자리에 섰을 때, 은혜를 구하고, 자비를 원하기는 더 쉽지 않았을까요? 

어찌 보면 강도의 고백은 오히려 더 쉬운 은혜의 자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든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은 마음이 더 강퍅해진 반대편 행악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좌절될 때,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갈 때 우리는 두 명의 상반된 행동을 하는 그들과 같이, 똑같은 선택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될지, 저주를 퍼붓는 자가 될지..... 벚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계절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결코 잊지 않는 지혜가 모든 선택의 순간에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길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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