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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과 Feb 26. 2022

팬티 차림으로 밤을 맞이하는 행복

서울에 와야 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기쁨을 온 힘을 다해 누리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상경을 준비했다. 비로소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기쁨보다는 아득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생겼지만, 집 뒤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음이 방해했고, 겨우 끼워 맞춘 듯한 창문을 통해 단 한 줌의 볕만이 들어와 집 안은 생기를 잃은 듯했다. 아무도 없는 방, 오직 나만이 있을 수 있는 이곳은 나조차도 밀어내는 서늘함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와 가장 많이 간 곳은 집보다는 술이 있는 공간이었다.


빛이 잘 들고, 따뜻한 집을 찾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의 원룸들이 있었다. 그렇게 홀로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방은 사계절 내내 따뜻하고, 주변이 건물로 쌓여 있음에도 볕이 잘 드는 공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방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토록 바라던 방해받지 않고 나를 안아주는 방의 아늑함을 얻어냈을 즘 남동생이 서울에 왔다. 나의 원룸은 단숨에 1인 1묘 가구에서 2인 1묘 가구가 되었다. 팬티만 입고 자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슬픔에 대해 누군가 알까? 어두운 밤의 의지와 달리 불빛이 서려있는 핸드폰을 알까? 나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을 잃었다. 


그와 스쳐간 원룸, 원룸에서 투룸, 투룸에서 쓰리룸이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모부는 남동생이 서울에 오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명목 아래에 우리를 한 지붕 아래에 묶어 두었다. 방이 많아지고, 집이 넓어져도 그곳에는 나를 위한 공간 따윈 없음을. 방문 틈 사이로 “형 12시 방향!”을 새벽 2시까지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나의 공간은 점점 넓어져 가는데 나만의 공간은 남동생이 형님을 외치는 횟수만큼 줄어들었다. 원룸에 있을 때는 온전히 그 공간을 홀로 누릴 수 있었는데, 그 순간 나를 온전히 안아주던 원룸이 그리웠던 것은 사실이다. 


시간은 흘러 내 집이 생긴 지도 10년이 되었다. 남동생을 집에서 제거하자, 드디어 집안에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나는 온전히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누리게 되었다. 집안은 분가에 대해 떠들썩했고, 모부의 바람과 멀어진 만큼 그들과도 멀어지게 됐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미움을 사 내 방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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