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관계로 살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삶. 내가 누군가를 신경 쓰는 일도 누군가 나를 신경 써주는 일도 없다. 잠시 모든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복잡한 마음, 실망감과 허탈함. 물건만 정리할 게 아니라 사람도 정리해야 하는 거였다. 내가 연락을 안 하니 신기하게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관계를 정리하는가 보다. 오히려 편하다. 연락 오는 사람도 없고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온전히 내 세상이다. 한동안 연락이 끊긴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본다. 반갑다. 그리고 반갑게 맞이해준다. 친할수록 반갑고 고마운 걸 잊고 사는 것 같다. 이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려고 한다. 인맥관리? 인맥은 관리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스타는 인맥관리를 하지 않는다. 팬 관리를 할 뿐이다.
애써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도움을 받으려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오래전에 나는 친한 동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못해 서먹한 관계가 된 적이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그래서 더 미안함을 안고 산다.
적당한 거리의 사람들, 어차피 친한 친구는 이미 없다. 오래전에 다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만나거나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내 마지막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다. 회사는 딱 회사만큼의 거리를 두면 된다. 친하다는 의미는 어떤 걸까? 베프라는 의미는 어떤 걸까? 내가 생각하는 베프는 중학교 때 친구와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이 있었다. 하루 종일 얼굴 맞대고 앉아서 수다를 떨어도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그런 친구가 베프인 걸까? 그 친구들은 다들 뭐하고 살까 궁금하다.
요즘은 서울에서 퇴근 후에 카페를 찾는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글을 쓰거나 책을 본다. 예전엔 이 시간에 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내 시간이 많아졌다. 주말인 지금도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제주에서도 남편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할 일을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서로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도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좋다. 너무 신경 쓰다 보면 하던 일도 안된다. 유튜브를 보던지 바둑을 두던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 말라고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사진을 찍고 블로그를 한다 해서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관심 밖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작은 존중이다.
새벽시간에도 출근하고 카페를 간다. 음악이 흐르는 따뜻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글쓰기 위함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처럼 의욕이 없어서 글쓰기가 뜸해진 건 아니다. 다른 곳에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글 쓰는 양이 많아서 여기까지 미처 오지 못할 뿐이다. 책도 읽어야 하고 블로그도 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도 시간이 모자란다. 주말 어느 날에는 2만 자의 글을 쓴 적도 있다.
늦은 시간까지 하는 할리스커피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시끄럽지만 글쓰기에 집중하면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집중이 잘된다. 집에 있는 것보다 글쓰기는 더 잘 되는 것 같아 아침저녁으로 카페라는 공간을 찾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곳에 와서 공부하나 보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집중이 될까 싶었는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신나게 떠들지만 어느 한 켠에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혼족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신경 쓰지 않는 삶은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앞으로 무엇을 하든 내 시간은 중요하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