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말이죠.', 마당지기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오랜만에 마주친 동네 아이들이 훌쩍 커 있는 모습을 보며, 새삼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이 아이들이 이만큼 성장한 동안 나는 또 그만큼 노화했겠지’라고 생각하다, 급기야 몸도 마음도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죽음 이후에 나는 세상에 어떻게 기억될까?’
어렸을 땐 ‘나'라는 존재가 화석처럼 영구히 흔적을 남겨 오래도록 기억되는 존재가 되길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내어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한 '희망'으로 여기고 산 적도 있었죠.
그동안 굴곡 있는 경험의 축적이 가져온 결과일까요? 아님, 흘러간 시간이 순순히 가져다준 교훈일까요?
요즘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모두에게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결코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위대한 업적이나 영향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의 엄청난 과오나 악행 때문일 경우도 있으니까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퇴임 후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라는 어느 기자의 물음에, "퇴임 후엔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위치와 직책에 있는 사람의 미래 희망이 '잊혀진 사람이 되는 것'이라니...
인생에서 업적을 이루고, 목표를 달성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도 무척 중요한 일이겠지만, 사실, 요즘같이 '자본주의'와 '경쟁'과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업적과 성공과 영향력은 때론 타인이나 자연을 짓밟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과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그들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삶.
나 개인의 목표와 존재감보다 우리 모두의 목표와 존재감에 집중하는 삶.
바로 이러한 삶이 저 커가는 아이들에게 내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인생 후반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평화롭게... 잊혀진 사람이 되어간다면 그것도 참 좋은 '끝'이 아닐까요?
'나 탐구 워크북: 나를 잊은 나를 위한 문장들'
언니네 마당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