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제트
(이 글은 2014년 5월 27일,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 창간준비호 온라인 버전에 실린 글입니다. )
청마의 해 정월에 결혼한 말띠인 나는 결혼 4개월 차에 뱃속에 16주 된 태아와 함께 매일 강남역을 헤집고 출퇴근하는 건설회사 과장이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건설현장을 오가며 온 몸에 사리를 품은 36살 노처녀 대리였던 나의 수식어가 이리도 많아졌다. 또한, 불어난 수식어만큼 내 삶도 여러 가지로 달라져있다. 연애 때부터 남편은 여느 남자들하곤 달랐다. 기본적으로 30대 후반에 상대에 대한 몰입도가 마치 20살 불끈한 청년 못지않았던 것도 그렇고…
소개팅으로 만난 지 3번째 만에 ‘꿈이 뭐예요?’라고 대뜸 묻는 나에게 ‘로또가 되거나 돈 많이 벌어 건물 사서 임대업으로 먹고 살기’ 류의 얘기를 하지 않는 첫 남자였고, 소녀 모드로 돌변하여 꿈에 대해 주구장창 설명하던 나를 외계인 보듯 하지 않는 첫 남자였다. 겁도 많고 남자에 대한 불신도 많았지만 끊임없이 남자들과 어울리며 반하기도 일쑤였던 내가 달라진 게 그런 남편이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1년여의 시간 동안 잦은 감정싸움을 해가며 어느덧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었다.
결혼을 결심한 후 상견례부터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며 느낀 것은 대한민국의 결혼은 다양한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자본주의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뭐, 사실 이런 오지랖 사회에 살면서 남들의 시선이 집약된 결혼이란 것을 하는데 오죽하랴. 애초에 쓰려던 글은 결혼 준비과정에서 겪은 쓸모없이 상품화된 우리나라 결혼문화에 대한 성토에 가까웠는데, 그것은 어쩌면 돈 없는 자의 열폭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의 미혼남성들의 찌질화와 미혼여성들의 천민자본주의화를 이야기할까 했는데 이것 또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 전부터 만약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되면 가장 간략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터라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 다행히 비슷한 생각의 남편과 만났음에도 진행상의 이러저러한 부침은 많았다. 대부분은 둘 사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양가의 성향 차이와 주변의 입방정에서 비롯된 문제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정반대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에서 오는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처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로맨틱하다. 영화 속 건달인 신성일이 엄앵란이 말한 클래식을 듣게 되고 부잣집 소녀인 엄앵란이 오토바이를 타게 되는…. 물론 신랑은 건달도 아니고 나는 부잣집 딸도 아니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신혼여행 마지막 날부터 대판 푸닥거리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 싸움의 원인은 양가 부모님 선물, 두 번째는 그 뒤로 2주 뒤 그놈의 명절 설날 제사, 세 번째는 뭐 사실 오늘 아침도 싸웠다…. 아무튼 초반의 싸움 원인은 서로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결혼 준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싸움 원인도 하나 같이 주변 결혼한 사람들 대부분 겪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싸움의 형태는 항상 패턴이 비슷하다. 연애 막바지 즈음 알아채고 이걸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이게 고쳐지기는커녕 사실 더 커지는 것도 같다. 싸움의 원인을 보면 이건 너무나 다른 성격 차이다. 서로 닮아서 끌린 사람들은 그냥 무던하게 사는 반면 서로 달라서 끌린 사람들은 그래서 조율을 잘 하면 정말 잘 사는데, 아니면 정말 끝이라고 하더라.
아무튼 우리는 없는 형편을 서로 인지하고 둘이 최대한 알아서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기 때문에 비용 문제에서는 큰 부침이 없었지만 문제는 양가 집안 어른들의 성향이 다른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본인 부모에 대한 측은지심이 200만 퍼센트는 상승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모드는 결혼 후 여지없이 더 날것으로 드러나더라. 그리고 결혼 후에는 결혼 전과는 다르게 서로 성장해온 배경이나 천성 차이로 인한 부침이 있다. 이건 공동생활을 하는데 따르는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은 하지만 가끔 연애 때를 생각해보면 이 사람 그간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 너무나 다르다. 이걸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로 판단했다간 핵전쟁이 되기 쉽고, 누가 좀 놓고 누구는 좀 더 조이고 하는 조율이 필요한데 머리로는 아는데 막상 체화되어 36년을 살아온 터라 쉽게 고쳐지진 않는다.
결혼 전 집안에서 내 방 안에 해당하는 것 정도만 해결하고 살아왔던 나는 결혼 후 남편이 알아서 척척 집안 살림을 해나가는 걸 보며 마냥 신기해만 하다가 이 사람이 어느 순간 불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리스트 해서 이것저것 나누자 하니 남편은 정 없어 보여 싫다고만 하고 그냥 내가 알아서 좀 더 잘해주길 바랄 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나는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함에 즉각 넣지 않고 모아 놨다 가져가려 했는데 남편은 즉각 다 처리해야 하고 바닥에 무언가 흘리면 어느 정도는 좀 뒀다 닦으면 되는데 남편은 그렇지 못한 것. 내 기준에는 회사에서의 업무강도도 세고 집중도도 높은데 집에 와서까지 스트레스받으며 긴장하고 살고 싶지 않고, 남편은 긴장 체질인지 집에 와서도 자기 전까지 모든 프레임이 딱 박힌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불만은 결국은 내가 참는 만큼 상대도 참는 거였다. 너무 다른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이니 하나하나 배려하고 맞춰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해? 개인적으로 이해란 것은 그저 변명에 불과한 듯하다. 애초에 다른 인간인데 어떻게 이해하나?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거지. 상호 간의 행동과 반응에 있어 결혼 전 서로에 대한 자료가 많았다면 좀 더 매뉴얼화되어있을 수 있을까? 글쎄, 연애 백번 해본들 좀 더 쉬웠을까? 가장 밀접한 관계가 생기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연애 못지않게 드는 걸 봤을 때, 결혼은 정말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란 말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집중되었던 엄마의 삶에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져야 하는 물리적 심적 거리로 인한 갈등. 같이 몰려다니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놀던 친구들에게서 나 혼자 연대를 못 느끼는 것들. 최신 트렌드가 주류를 이루던 나의 검색어가 인테리어 관련 소품들과 이제는 임신 육아 관련으로 변화되는 것. 나도 모르게 힘들거나 하면 조금씩 솟아오르는 배를 문지르며 새 생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결혼 전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연대라는 개념이 나 자신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혼자 살다 혼자 하직하는 관점에 맞춰졌다면, 지금은 나와 더불어 내 자식이, 우리 가족이 잘 살기 위한 세상이 어떤 것인가로 좀 더 폭넓어진 고민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었다는 것. 결혼 전까지 주말 내내 나가서 일하며 중심 구성원으로 임했던 것과 달리, 임산부가 되니 과제나 업무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그것이 배려이지만 아직은 일 욕심과 상충이 되어 동료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상사에게 눈치도 보인다는 점. 나 혼자 소비하면서 느꼈던 자기만족이나 행복을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서 그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평온하면서도 달달한 행복.
이 모든 것 안에는 물론 들쑥날쑥한 일상의 비정형적인 패턴이 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무엇을 떠나, 나는 아직은 결혼이란 세계에 문을 열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것들을 기대해 본다. 그것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말이다.
결혼 전 나 자신의 일과 일상만 돌보고 살면 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부침이 있거나 정체되면 더 불안했던 시기였다면, 이제는 일과 더불어 가정으로 인생의 무대가 두 개로 확장되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하나가 조금 부족하거나 힘들더라도 다른 하나에서 쉬어가거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혼자일 때 보다 함께여서 분노도 슬픔도 두배 크고 두배 잦아지지만, 또한 즐거움도 행복도 2배가 되니 이보다 더 버라이어티 한 것이 어디 있을까.’ 라며 오늘도 셀프 마약을 투여해 본다.
코제트 님은 오랜 지방 파견 생활로 인해 자연을 싫어하고 도시를 좋아하는 공대 언니입니다. 연애, 결혼, 임신을 1년 사이 단기 속성으로 경험하며 질풍노도의 행복한 30대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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