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를 만나볼 시간 (1)

가족상담사 최형선 언니 인터뷰

by 이십일프로

<언니네 마당>의 창간호 주제는 ‘나’이다. 이 주제가 주는 압박에 몸부림치며, 영혼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드디어 이 주제를 풀어내 줄 인터뷰이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나’를 제대로 알고, 현재의 ‘나’를 사랑하며,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마음 이야기 전문가이자 가족 상담사인 최형선 언니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나’라는 주제로 거창하고 심오한(?) 담론을 하기에 앞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를 예상하고 마음의 경계를 풀고 인터뷰 장소에 나갔던 필자는 그녀와 대화를 시작한 지 약 3분 만에(30분이 아니다.) 무방비 상태로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밀한 기억 속의 유일 한 ‘나’, 바로 필자 자신을 발견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니네 마당 여기 상담실 이름이 모래 상담실이어서 갸우뚱했었는데 와보니 알겠어요.

왜 모래 상담실인지. 모래가 상담실 한가운데에 있네요.

최형선 언니 한번 만져보세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모래를 만지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고 팍팍 만져보세요. 모래가 흐트러졌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어요.

언니네 마당 모래가 너무 가지런히 놓여 있어서 감히 마구 휘저을 용기가 안 나네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최형선 언니는 내 안의 어린 나를 불러내어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잊고 지냈으나 언제나 내 안에 있던 아이인 채로의 ‘나’... 나는 눈물로 흐릿해진 채로 그녀를 마주하였다.


¥­┤¤│ΩÂ┤þ│╗┴÷27.jpg 최형선 언니의 "모래 상담실" 모습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 저도 어렸을 때, 정확히는 중2부터 고1까지 ‘나는 누구이고 인간은 무엇일까?’, ‘사람은 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들을 가지고 정말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어요. 이러한 질문들이 제 마음속에서 저를 너무 고통스럽게 만들더라고요. 나중에는 그냥 ‘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자.’라고 생각했죠. 우리의 인생은 마치 시냇가의 물이 졸졸졸 흘러가다 바위를 만나면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기도 하고, 더러운 구정물과 같은 것들과 혼합되기도 하고, 아주 맑은 물과 섞일 때도 있고, 아주 좁은 실개천을 통과할 때도 있고, 아주 넓은 데로 흘러갈 때도 있는 것과 같죠. 그러다가 그 물은 궁극적으로 바다로 가게 되죠. 그 바다는 우리의 인생에 비유한다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죽음’이겠죠. 우린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죽음으로 인해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거죠.


‘나’라는 존재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어요. ‘나’라는 존재는 무(無)에서 창조되어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 이치를 따르고 있고요. 결국 우리 모두가 무(無)로,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즉,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잘 살아가야 한다’면 잘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이 나오겠죠.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결국은 다 똑같이 세끼 밥 먹고, 잠자고, 일하죠. 인간이라면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한데 단지 더 큰 집에서 살고 덜 큰 집에서 살고, 더 큰 차를 타고 덜 큰 차를 타는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그리고 인정의 욕구


메일로 보내주신 질문 중에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남이 보는 나’는 비교적 쉽게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나’는 잘 봐지지가 않죠.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라요. 그때부터 남을 의식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자신과 남을 비교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자꾸 뭐든지 남과 비슷하게 하려고 하죠. 그러다 보면 개성도 없고, 획일화된 우리들이 되어가는 거예요. 어린아이들을 한번 보세요. 엄마,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잘 놀다가도 엄마, 아빠가 “이쁜~짓!” 하면 얼른 이쁜 짓을 하고, 부모가 원하는 것에 따르고…. 이것이 ‘인정의 욕구’, ‘사랑의 욕구’인 거예요. 그렇지만 아이가 원래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는 걸 알고 그것을 느끼고 있다면 굳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겠죠. 갓 태어났을 때부터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들은 부모의 ‘인형’으로, 부모의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으면서 그들의 인격을 서서히 잃어가죠. 아이는 자신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부모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에 점점 길들여지고, 그렇지 않으면 말 안 듣는다고 혼나고 맞고 하면서 아이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죠.


요즘 중학교 아이들한테 “너의 생각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해요. 심지어 어떤 아이는 “네 꿈이 뭐야?”라고 물어봤더니 “몰라요. 엄마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하더군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양육되지 않는 아이들은 무기력해지죠. 엄마가 끌고 가면 끌려가고, 멈추면 멈추고…. 지금은 성인이 된 우리도 그렇게 자랐어요.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하고 자랐죠. 상담 오신 한 기혼 남성분 이야기를 하자면, 자기는 너무 착한 아들이었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자랐대요. 그런데 결혼하고 모든 것이 혼돈 속에 빠져든 거예요. 이제까지는 부모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가기만 하면 됐는데, 결혼하고 부모와 떨어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내가 다 해주길 바라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답답해하고…. 그러다 보니 이혼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집안의 가장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아예 이행하지 않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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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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