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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의 함정

by 나무를 심은 사람

내가 할머니가 되더라도

하나도 잊지 않게

하루라도 더 생생할 때

너를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기고 싶은데


요즘 계속

너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느낀다.


너를 그리워하는 것과 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듯한데, 아직도 뾰족하게 그 차이점에 대해 감이 없으니 막연하다.


그리워하는 글을 쓰는 건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고,

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가다듬어진 에세이.


일단 너에 대한 데이터, 추억이 지나치게 많고, 그것을 걸러 엮어내기가 쉽지 않다. 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너의 죽음 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과 생각, 일상. 너무 많은 물음표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 떠올리고 싶은 것과 떠올리기 힘든 것. 정리하고 싶은 것과 정리하고 싶지 않은 것. 이 모든게 뭉텅이가 되어서 실타래를 풀어 무엇인가를 짜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문장을 완성하려, 나도 모르게 너에 대한 왜곡, 미화 혹은 과장을 하지 않을지 이러저러한 생각에 휩싸이다 보면 쉽게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운 것, 피하고 싶은 것은 자기 연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슬픔과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슬픔에는 승화의 에너지가 있고 자기 연민은 덫 같은 느낌이 있다. 물론 건강한 자기 연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자기 연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마도 너의 장례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생각은 너의 투병 중에도 많이 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데, 네가 아프고, 점점 많이 아프고, 불안에 나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 던 어느 날, 소파 위에서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네가 떠나고 그 이후의 나의 모습.

다른 사람들에게(특히 동네 엄마들, 내 사정을 알든 모르든) 비춰질 처량한 나의 모습, 그리고 이 사정을 어떻게 설명하지 등등 나의 체면에 대한 걱정.....이랄까.....


이 따위 생각이 직관적으로 떠올랐고(나는 극 N이라 생각의 홍수 속에 살기에), 다행히도 바로 이것이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꼈다.


지나친 자의식. 미성숙한 자기중심적 생각.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 쓰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함.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본성이 나온다더니, 평생 착한 콤플렉스에 시달린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을 의식하고 있었다.


찰나의 생각이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나의 못난 구석. 그 순간부터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 생각들을 가지치기했다.


중요한 것에 집중. 너와 나에 집중. 지금 이 순간에 집중. 타인의 시선을 거둬내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너로 인한 이 연습은 현재 육아에도, 나 자신의 삶을 사는데도 정말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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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그리워하고 슬퍼하되

자기 연민의 함정에 빠져서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


죽음이라는 따끔한 이별 뒤에

우리가 하나 되었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네가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음을 느껴.

(시나 영화 속 대사인 줄 알았는데 이건 진짜였어)


이러저러한 N스러운 생각에

글 쓰긴 좀 막막해도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너를 열심히 그리워하며

너를 열심히 그리며.


아마 이 연습 덕인 것 같아.

일종의 용기.

네가 나에게 주고 간 선물.

내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었을 어떤 선물. 은혜.


고마워.

내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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