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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었다.

암이었다.

by 나무를 심은 사람


여동생에게

2021년 봄, 암이 찾아왔다.


아이들의 어린이날을 치르고 지쳐 있던

5월의 어느 날, 덤덤하게 걸려온 네 전화.


유산을 하고 소파수술 후 확인검진에서 난소에 무엇인가 발견되었다는. 난소에 무엇은 전이된 것이었고.


너는 이미 홀로 중간병원을 거쳐 큰 병원을 돌고 위암 4기라는 결과를 나에게 통보했다.


“언니야 엄마 아빠한테 대신 좀 말해도. “

“응. 그래. 알았다. “


그날 저녁,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고, 나는 아이들에게 안방 티브이를 틀어주고 문을 살 닫았다.


그날은 회색이었다. 나는 동생의 부탁을 수행해야 했고, 무너지는 부모님 앞에서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실감 나지도 않았다. 암 4기가 무엇인지 그 실체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심각성도 그 결과도. 암은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낯선 단어였다. 검색은 두려웠다.


외과의사인 사촌동생의 전화를 받은 그다음 날부터는 온통 검은색이었다.


“누나, 못된 놈이야. 알지? 장진영이랑.. 유채영이랑.. 반짇고리암이라고... 빠르면 1년.. 길면 2년...... “


1학년, 5살 아이들 앞에서

주저앉아 오열했던 기억인데..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일주일 아님 열흘 아님 몇 달이던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밝은 햇살에 빛나는 오월의 나뭇잎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모두 영화 같이 느껴졌다.


기계적으로 여전히 씩씩하게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과 웃으며

아이들 지켜봤지만


유체이탈이 된 듯.

나는 현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둥둥 떠 다녔고,


홀로 되는 순간이 오면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


어릴 때부터 눈물 없던

너는 너무 무덤덤했고,


네 앞에선

슬픔을 드러낼 수도

속 시원하게 울 수도 없었다.


2023년 무더운 여름

너와 함께한 마지막 날에


우린

쓸데없는 농담을 했고

서로를 놀려 먹었고

나는 주저리주저리

육아 스트레스를 늘어놨다


너는 가늘게 웃었고

조금 졸려했고

또 가늘게 웃다가

졸려했다


나는 네 손을 잡았고

기울어지는 네 머리 뒤에 수건을 받쳐줬다

날이 더워 땀 때문에 고생하는 너를 위해

쿠팡에 바람이 잘 통하는 목쿠션을 검색했고

네가 필요 없다 해서

시원한 인견이불을 검색했다


너는 내 손을 톡톡 치며

핸드폰 그만보고 자기를 쳐다보라며

검지 손가락으로 네 얼굴을 가리켰다

나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이제 거의 주문 다 했다고

핸드폰에 코를 박고 인견이불을 주문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본

너는 피곤해 보였고

한숨 자야 될 것 같았다.


“내 갈게”

“응.. 언니야 엄마한테 내일 입원하지 말자고 부탁 좀 해도”

“응. 알겠다. 내일 또 오께. 좀 쉬고 있어. “

“응. 잘 가 “


그리고 나는

다음날 집 앞에 온 인견이불을

너의 장례식장에서 반품했다.


우리는

이별이 그렇게나 가까이 다가와 있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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