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와 부모의 생활을 다룬 ADHD 초밀착 다큐 에세이]
-초등교사 엄마의 금쪽이 둘 양육 에세이- [4. 신과 함께-무엇이 지옥인가]
일요일 오전이다. 남편이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다. 주 5일 내내 잔업까지 해내며 고된 직장 생활을 견뎌냈으니 고작 주말 하루 이틀 주워지는 이런 편안한 여유는 당연한 보상일 것이다. 남편은 출근 시간이 유동적인 회사원이다.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고, 늦게 출근하면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 남편은 금쪽이와 금동이의 등교를 위해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금쪽이와 금동이의 아침은 나보다 늦게 출근해도 되는 남편이, 저녁은 남편보다 일찍 퇴근하는 내가 담당한다. 주중에 보통은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는 금쪽이를 깨워 교문 안으로 떠밀어 보낸다고 고생이고, 어떤 날은 출근 시간이 임박해도 안 일어나는 금쪽이를 어쩔 수 없이 두고 나와야해서 마음이 불편해 고생일 남편이다. 내가 홀가분하게 출근할 수 있는 이유가 전쟁 같은 아침의 상황들을 남편 몫으로 떠넘겨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편이 나 대신 힘든 역할을 묵묵히 해내주고 있어 참 고맙다.
마음을 담아 남편이 좋아하는 사과를 예쁘게 깎아서 TV 앞 소파 테이블에 살포시 놓는다. 남편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한 때 영화관에서 둘이 같이 본 적이 있는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이다. 금쪽이가 유치원을, 금동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의 평일 낮에 둘이 잠깐 짬을 내어 본 영화였는데 지금 봐도 참 재미있다. 순간 얼마 전 우연히 읽은 종교의 기능들 중 하나가 떠오른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며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절한다.'였던가.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지, 가짜 조퇴도 하지, 숙제도 하기 싫어하지 등등 말하자면 너무 많아 입이 아플 정도인 우리 아이들에게 딱 필요한 기능 아니겠는가. 영화에서 펼쳐지는 각종 지옥의 모습들을 금쪽이와 금동이에게 보여주면 자신의 행동을 자연스레 반성하고 큰 깨달음을 얻어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아도 바른 생활들을 실천하게 될 것 같다. 꽤나 좋은 생각 아닌가. 지옥을 그린 장면이 잔인해서 그런 건지 12세 관람가라는데 불교 신자들은 그보다 어릴 때부터 지옥에 대해 공부할텐데 싶어 관람가를 내 마음대로 낮춰본다. 그 사이 주인공이 살인지옥을 무사히 통과해 나태지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7개의 지옥 중 벌써 하나를 놓쳤으니 이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보여줘야 한다. 다급히 아이들을 부른다.
"이거 진짜 좋은 영화야. 엄마, 이거 되게 재미있게 봤어. 같이 보자."
TV 보자는 말에 아이들이 군말 않고 옆에 앉는다. 아무 생각 없이 볼까봐 지레 걱정되어 장면마다 내가 설명을 덧붙여 준다.
"여기는 나태 지옥이야. 게으르게 살면 나태 지옥에 떨어져서 저렇게 벌 받는대.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치?"
천만 영화답게 몰입력이 좋다. 아이들이 벌써 영화에 깊게 빠져들어 있다. 화면에서는 커다란 기둥 3개가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굴러가고 이미 죽은 사람들이지만 또 죽지 않기 위해 계속 뛰고 있다. 힘들어서 멈추면 기둥에 깔려 죽고, 깔려 죽기 싫어 원 밖으로 뛰쳐나가도 무시무시한 인면어에게 잡아 먹혀 죽는다. 죽어서 쉴 새 없이 달려야 하는 벌을 받을 걸 알았다면 살아 생전 나태한 삶을 살 사람이 어디 있을까. 좋은 교훈을 주는 장면이라 흡족한 마음이 든다.
주인공들은 이제 거짓지옥으로 향한다.
"저러니까 남에게 피해주는 거짓말은 하면 안되고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하는 거야."
금동이는 공부 안했으면서 했다고 하고, 답지 보고 베껴 놓고 문제 다 풀었다고 내밀 때가 자주 있다. 그런 금동이를 의미 있게 바라보며 힘을 주어 훈계를 한다. 혀를 뽑는다는 게 너무 잔인하지만 무시무시한 거짓 지옥을 보며 뭔가 깨달았을 거라 여긴다. 그렇게 모든 지옥들이 지나가고 착하게 살아온 주인공이 귀인이 되는 장면까지 함께 본다. 아이들은 인생 처음 지옥이란 곳을 알았고, 사필귀정, 권선징악의 교훈을 깨달았을 것이다. 뭐가 옳은 행동이고 옳지 않은 행동인지 사리분별력도 조금이나마 생겼을 것이다.
"이거 2탄도 있으니까 다음에 같이 보자."
2탄까지 보면 이 교훈들이 더 마음 깊이 새겨지리라.
하루 뒤 월요일 저녁시간, 영어 학원 수업을 마친 금동이를 마중 나간다. 영화의 여운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을 때라 여기며 오늘 영어 학원에서의 행동이 좀 달라졌으려나 싶어 말을 걸어본다.
"금동아, 오늘 학원은 어땠어? 재미있었어?"
"아니. 엄마, 학원이 나한텐 지옥 같아. 나 학원 다니기 진짜 싫어"
아, 지옥을 이렇게 써 먹을 줄이야. 지옥을 보여준 나의 의도와 정반대이다. 뒷통수 맞은 기분이다. 오늘도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설렁설렁 시간만 보냈나 보다. 금동아, 엄만 네가 열심히 하라는 뜻이였다고! 열심히 안하니까 지옥같지! 12세 관람가 영화를 통해 내가 주고자 했던 가르침은 이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멀고 먼 것인가 보다. 아니다, 어쩜 이 아이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거 즐기며 더 잘하라고 보내는 학원도 아니고, 싫어하는 영어인데 학교와 사회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 요구되는 스펙을 좀 갖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가 억지로 보내는 것이니 이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지옥 같은 괴로운 상황일까. 어쨌든 보여주려고 했던 2탄은 잠정 보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