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두 아이 모두 ADHD #8

[ADHD 아이와 부모의 생활을 다룬 ADHD 초밀착 다큐 에세이]

by 위아영 WeAreYoung

-초등교사 엄마의 금쪽이 둘 양육 에세이- [8. 금쪽이와의 우중 데이트]


4월의 두 번째 토요일이다. 벚꽃이 절정인 이때 우리 가족 모두 벚꽃이 만개한 근처 공원에 가서 꽃 구경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데 하필이면 날씨가 안 좋다. 휴대폰 일기 예보 앱을 확인하니 곧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일요일인 내일도 하루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다.

금쪽이는 비가 와도 괜찮으니 나와 둘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한다. 비가 오더라도 걸어서 벚꽃이 핀 공원에도 가보고 옆 동네 번화한 상가 거리에도 가보고 카페도 가고 OO 문고도 같이 가보자고 한다. 그런데 금동이도 따라간다고 하면 어쩌지. 단둘이만 가고 싶은데 왜 따라 오려고 하나며 금동이에게 짜증내고 투정 부릴 금쪽이의 모습에 순간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 금동이에게도 물어본다. 같이 바람 쐬지 않으면 하루 종일 집에서 티비 보고 레고하고 게임만 할 아이이다.

"엄마는 누나랑 같이 나가서 벚꽃도 보고 옆 동네 가서 차도 마시고 문고가서 구경도 하고 올 건데 금동이는 어떻게 할래?"

"나는 안 갈래요. 아빠, 나랑 롤러 타러 가요."

남편은 집 앞 놀이터나 공원에는 같이 잘 안가지만, 운전해서 어디 가는 것은 좋아한다. 지난 주말, 내가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낼 때에는 우리 집과 경기도 반대편에 위치한 고양시 킨텍스까지 애들을 태우고 가서 모빌리티쇼를 관람해주고 왔다. 그리고 롤러 타러 가면 구석 테이블에 앉아 편히 폰을 하는 혼자 시간만의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어 좋아하는 것 같다. 흔쾌히 금동이의 요구를 수락해주는 남편의 반응에 나와 금쪽이, 남편과 금동이 이렇게 2대 2로 갈라져 토요일 오후 시간을 보내는 걸로 수월하게 결정이 된다.

요즘은 일기 예보가 참 잘 맞기에 일기 예보대로 비가 진짜 올 것이라 믿지만 그래도 혹시나 비가 안오면 짐이 될 우산이기에 우산을 딱 1개만 챙겨 외출한다. 비 오면 사이좋게 함께 쓰면 될 일이다. 어디서 솟아난 확신인 건지 비가 많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먼저 공원쪽으로 걸어가는데 금쪽이가 금쪽이답게 쫑알쫑알 말이 끊임이 없다. 목이 말라 아이스커피 하나 사가지고 걷고 싶은데 도통 어디서 말을 끊어야할지 모르겠다. 횡단보도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금쪽이 말에 내 말을 살짝 얹어 본다.

"엄마, 저 앞 커피숍에서 테이크 아웃 하나 할게."

"아니, 엄마. 왜 내 말을 끊고 그래. 엄마는 그게 문제야. 내가 말하고 있는데 늘 끊어버리니까. 아니. 그리고......"

이제는 화제가 나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고 이때다 싶은지 줄줄이 비엔나처럼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금쪽이는 목소리도 참 크다. 게다가 속사포같다.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사람들 몇몇이 누가 왜 저러는건가 싶어 뒤를 돌아 나와 금쪽이 얼굴을 확인하기도 한다. 익숙하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전혀 창피하지도 난처하지도 않다.

때마침 신호가 바뀐다. 같이 길을 건너며 금쪽이에게도 음료를 하나 시키길 권해 본다.

"그래, 그런데 지금 커피숍 지나치면 못 사 먹으니까 엄마가 말한 거지, 너도 뭐 하나 사줄까?."

"아니, 엄마. 나 기분 나빠서 도저히 산책 못하겠어. 나 갈 거야. 엄마 혼자 가"

획 방향을 돌려 원래 오던 길을 돌아간다.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당황스럽지도 않다. 금쪽이가 이러는 일이 한 두번인가. 이제 웬만한 일에는 감정이 동요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단련되어 있는 내 자신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왕 나온 김에 나 혼자라도 커피 하나 들고 벚꽃 산책을 하면 될 일이다.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공원 방향으로 몇 걸음 옮겨 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그냥 주위를 훑어보다가 나와 조금 떨어진 곳의 입간판 뒤에 수상한 동작으로 숨어 있는 금쪽이의 뒷모습을 본다. 뭐하나 싶어 보니, 금쪽이가 몸은 숨긴 채 고개만 빼들고 좀전에 내가 서 있던 커피샵쪽을 확인한다. 집에 간다더니 숨어 있었구나. 순간 상황이 재밌어진다.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금쪽이를 이젠 내가 몰래 지켜보고 있다. 금쪽이가 커피숍에 내가 없는 걸 알고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둘다 서로 웃는다. 그렇게 둘만의 데이트가 또 시작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원 인근이라 벚꽃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다들 허둥지둥이다. 우리처럼 근처가 집인 것 같은 사람들은 얼른 방향을 바꿔 다시 돌아간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내린다. 우산 하나를 같이 나눠쓰니 내 어깨 한 쪽이 다 젖기 시작한다. 목적지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우산 하나로는 안되겠다 싶다. 우산 하나를 더 들고 올 것을, 무슨 확신으로 우산 하나를 나눠쓰면 충분하겠다 싶었는지 모르겠다.

길을 가다 보이는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를 더 구매해 금쪽이에게 새 우산을 건넨다. 이제 옆동네 번화한 상점거리까지 절반 정도를 왔다. 금쪽이는 여전히 쫑알쫑알이다. 그래, 나한테 뭔가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이번에는 끊지 않고 "응", "그래" 로 맞장구를 쳐준다.


상점거리에 도착했는데 악세사리 노점상이 보인다. 반 년만에 다시 보는 터라 반가운 마음에 둘다 노점상으로 뛰어간다. '종로 은반지 은팔찌' 작은 가게 패찰 이름은 똑같은데 지난 번 오셨던 분과는 다른 분이다.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금쪽이가 더 커진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진짜 반가워요."

"학생이 무지 반갑게 인사해주네요."

"아, 저희 여름 때 여기서 은반지 구입했던 적이 있는데 언제 또 오시나 하고 엄청 기다렸거든요"

놀라시는 사장님께 내가 상황을 설명해드린다.

"월계수 반지를 구입했었는데 그걸 며칠 만에 잃어버려서 다시 구입하려고 한동안 주말마다 여기 와서 사장님 오셨나 안오셨나 찾아 다녔어요. "

"아, 그런 스타일 반지는 저쪽 사장님이 파시는 건데, 그 사장님은 저 쪽에 있어요."

하고 사장님께서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신다. 근처 가게의 캐노피 아래에 비를 피해 좌판을 펼치신 또 다른 사장님이 보인다. 맞다, 지난 여름 반지를 구입했던 그 사장님이 맞다. 금쪽이가 더 반가워하며 달려간다.

"어머, 애기가 왜 이렇게 반가워해주나?"

"사장님, 안녕하세요. 지난 여름 사장님한테 반지 구입했었어요. 그때 예쁜 거 싸게 팔아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데 그걸 잃어버려서 사장님 다시 찾느라고 몇 번 더 여기 나왔었어요. 그러다가 오늘 보니까 진짜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금쪽이가 상황을 설명한다. 비가 와서 한산한 거리라 손님도 없으셨을텐데 금쪽이가 이렇게 반가워해주니 사장님도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잃어버린 것과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더 싸게 내어주신다.

"잃어버린 거 또 산다니 내가 더 싸게 해줄게요. 그리고 내 번호 하나 받아가서 사고 싶을 때 연락줘요"

금쪽이 손목에 어울리는 팔찌도 하나 더 구입한다. 사장님이 추천해주시는 인피니티라는 팔찌다. 사장님이 본인이 추천해주는 디자인을 하면 후회가 없을 거라고 하시는데 금쪽이 마음에도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사장님도 우리도 서로 기분이 좋다.


다음으로 OO문고로 향한다. 한동안 아트OO만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 수십분을 구경하며 시간을 쓰던 금쪽이인데 아트OO 보다 수 배로 넓은 공간과 수 배로 다양한 물건의 OO문고를 발견하고는 아트OO는 이제 뒷전이 되었다. 필요한 것만 골라서 쇼핑하는 나와 필요하지 않아도 우선은 구경하고 보는 금쪽이는 쇼핑 스타일이 참 다르다. 금쪽이는 금쪽이대로 구경하고 나는 나대로 구경하다가 만나기로 하고 흩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는 꼭 자기 옆에 있으라며 내가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던 금쪽이인데 이젠 많이 컸다는 게 느껴져 대견하다.

신간 코너에 가서 어떤 제목의 책들이 있나 훑어보고 심리학 코너로 향한다. 책들이 출판사 이름순서로 정리가 되어 있다. ADHD가 들어간 제목들을 찾아본다. 몇 권이 눈에 띈다. 그 중에 한 권을 꺼내들고 훑어본다.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으면 나와 금쪽이, 금동이에게 도움이 될 책 같아 오늘은 이 책을 구입하기로 한다. 나만 읽겠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을 때, ADHD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때 이 책이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는 카페이다. 나는 따듯한 유자차를, 금쪽이는 블루베리가 들어간 요거트 스무디를 주문한다. 좀 전에 산 반지와 팔찌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도 보내고, 남편이 보내준 금동이가 롤러스케이트 타는 사진도 함께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금쪽이가 손을 휘저으며 이야기에 열중하는데 순간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 컵이 금쪽이 손에 맞아 엎어져 버린다. 얼른 엎어진 컵을 다시 세워보지만 음료의 2/3는 테이블 위에 쏟아져버린 상태다. 얼른 주변에 티슈를 찾는데 티슈가 보이지 않는다. 직원분들께 음료가 많이 쏟아졌다며 행주나 티슈를 좀 달라고 부탁한다. 많이 쏟아진 거면 직접 닦아주겠다며 직원분이 직접 테이블로 오신다. 바쁘신 데도 직접 나와서 닦아주시는 직원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런 상황은 금쪽이가 어려서부터 자주 있어 왔다. 어릴 때는 금쪽이 근처의 무언가가 엎어지고 박살나는 게 언제가 될지 늘 불안해하며 금쪽이를 주시했었다면 이젠 금쪽이도 커서 그런 상황이 많이 줄어들었기에 나도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황하지 않고 처리하면 된다. 그렇게 금쪽이도 상황을 처리하는 방법을 보고 배울 것이다.

서로 장난치며 웃을 수 있어서, 비가 오는 날이라 함께 우산 쓰고 걸을 수 있어서, 기다리던 악세사리 사장님을 만나 금쪽이에게 예쁘고 의미 있는 악세사리를 선물할 수 있어서, 맛있는 차를 마시며 얼굴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어서, 실수를 해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오늘의 금쪽이와 나와의 데이트 시간들이 더욱 특별해진 것 같다.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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