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2
집 근처 헬스장에 지원한 곳들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면접이 잡혔다. 한 차례 환승을 걸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곁들여진 거리에 있는 헬스장이었다. 도어 투 도어로 걸리는 시간을 재보았더니 25분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도착한 헬스장의 문을 밀고 들어서자,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단했다. 내부를 가득 채운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러닝머신 위에서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칼라풀한 운동화들, 쇳덩이가 쿵 떨어지는 소리, 온몸을 쥐어짜 내어 새어 나오는 미세한 신음소리들. 사이버펑크를 연상케 하는 LED조명이 천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초대받은 인싸들만 모일 것 같은 클럽에 잘못 입장한 범생이처럼 주눅이 살짝 든 모션으로 살짝 어깨를 움츠리고 가방 손잡이를 쥐었다. 단정하게 입고 온답시고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의 블라우스를 입고 온 게 잠깐 민망해졌다. 헬스장이라는 장소에 걸맞게 스포티한 면티나 입고 올 걸. 그러나 이제와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입구에서부터 몇 발자국 더 안으로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은 척(사실은 쭈뼛거리며 두리번대고 있던 차), 내가 적합한 인재인지 아닌지 평가할 오늘의 면접관(매니저)이 나를 알아보고서는 매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지원한 내 이력서가 컬러로 프린트당한 채 데스크에 올려졌다. 집에서 직접 뽑아온 흑백의 이력서는 가져오지 않은 척 가방 속에 가만 두었다. 헬스장에서 일해본 적이 있냐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출근 시간과 인센티브 수당과 주휴수당이 제공된다는 것과 같이 중요한 금전적인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다루었다.
업무도 내가 얼추 알아본 것과 같이 간단했다. 회원 등록을 받는 전산업무와 헬스장을 홍보하는 블로그 게시글 작성 정도가 전부였다. 이렇게 쉬운 일을 두고 사람을 뽑고 있는 사실에 의심이 갔다. 이런 편한 조건이면 누구나 다 하고 싶을 테다. 나는 청소와 빨래에 대해 질문했다. 우려와 달리, 청소는 일절 할 것도 없으며, 빨래는 세탁업체에 맡기기 때문에 배송되어 온 세탁물만 옷장에 정리해 넣으면 된다는 거였다. 굳이 청소라면, 탈의실 바닥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밀대로 쓸어 모으는 정도와 세탁물 포대가 가득 차면 교체해 주는 수준이 전부였다. 청소기나 걸레질로 내가 직접 쓸고 닦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받아냈다. 기대했던 조건들을 다 갖춘 이상적인 근무지였다. 첫 지원부터 일이 술술 풀렸다.
면접을 보던 매니저도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종이 한 장에 담긴 나의 지나온 삶의 흔적을 보며, 나에 대해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책임감 크고 성실할 것 같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건 아닐까, 순간 서명을 하기 전에 작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헬스장은 딱히 진상이라 할 만한 손님은 없죠?"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직원들이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하는 건 원치 않아 진상들은 다 처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혹시라도 누가 진상짓 부리면, 가만히 받아주고 있지 말고 들이박으라고.
어느새 내 사인이 절반 씩 담긴 계약서 두 장이 복사되어 내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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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