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를 위한 경제학』, 김병권
‘성장’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라는 식의 자극으로 가득하던 이전의 자기계발서는, 점차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돌보고, 지치지 않게끔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마음챙김을 다루는 방식으로 전환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 지쳐 있고,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사회 전반의 트렌드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성장이 각종 사회 문제와 불평등, 기후위기까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과거의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성장’, ‘녹색성장’, ‘포용적 성장’ 등, 빠른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보완하겠다는 듯 성장이라는 단어 앞뒤로 여러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김병권)의 저자가 지적하듯, 오늘날의 상황은 “‘성장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성장은 단서를 붙여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성장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불평등, 환경파괴 등 다른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사회는 지났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정책 목표에서 경제 ‘성장’이 지치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성장을 최우선순위에서 놓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레타 툰베리가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문제 자체보다 해법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듯, 우리는 경제성장 없는 사회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주류경제학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활동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내부적인 순환에 한정되었다. 가계와 기업이 주체로 있는 시장에서, 토지·노동·자본의 생산요소와 재화·서비스가 거래된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자원, 생산의 결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폐기물 등은 도식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환경오염 등은 ‘외부효과’라는 일종의 예외현상으로서 다루어졌다. 이러한 접근은 산업화 이전까지는 큰 이상 없이 적용될 수 있었으나, 각종 생태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여러 부작용을 일으킨다. 탄소세와 같이 오염을 유발하는 요인을 화폐가치로 환산해 내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연의 모든 요소가 화폐가치로 환산될 수 없을 뿐더러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해 몇몇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를 보면 실제로 거래되는 탄소 가격은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에 비해 크게 부족한 실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생태경제학은 이러한 인간의 활동 범위만을 고려한 주류경제학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비판하며,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서 고려하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모든 경제활동은 물질과 에너지의 소비를 동반한다. 기술혁신을 통해 물질 혹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물질 및 에너지의 사용을 다른 요소로 온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결국 경제활동은 어디까지나 지구에서 가용한 물질과 에너지라는 물리적 요소에 메여 있는 셈이다. 저자는 열역학 법칙을 도입해 이를 설명한다. 재료 없이 레시피만으로 요리를 할 수 없듯, 경제활동에는 물질의 투입이 동반되어 그 결과로 온실가스 등 폐기물이 발생하며, 투입된 에너지는 열에너지 등 가용이 어려운 형태의 에너지원으로 변환된다. 특히나 인간이 지구의 거의 모든 영역을 개발한 ‘꽉 찬 경제’의 시대에 이러한 자연자원의 투입과 폐기 흐름은 경제활동에 중요한 제약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생태경제학은 경제활동이 갖는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고려해, 원료·에너지의 소진과 폐기물·폐열의 유출을 포함한 경제 모델을 제안한다.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는 이를 지동설에 비유한다. 지구를 중심으로 다른 천체가 움직이는 천동설에서 지구 역시도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천체의 일부임이 밝혀지듯, 주류경제학이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내부 순환을 중심으로 경제를 모델링했다면, 생태경제학은 지구 전체 생태계 순환의 일부로서 인간의 경제활동을 조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경제학의 접근은 지구에 물리적 한계가 있듯 경제 규모에도 어디까지나 제한이 있으며, 즉 경제가 무한히 성장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생태발자국을 포함한 여러 자연과학적 지표는 지금의 경제 규모가 이미 지구가 처리 가능한 물리적 한계를 한참 넘어섰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우,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인처럼 살아간다면 지구가 3개나 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양의 생태 허용량을 소비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생태 용량에 있어서 빠른 속도로 적자를 내고 있고, 그 대가로 발생하고 있는 자원고갈 및 기후위기는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있으며 그 정도 또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결국 인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제성장의 물리적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여전히 경제성장이 기본조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성장 없는 사회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의도적으로 성장 없는 경제로 진입하는 경우와, 성장을 추구하다가 실패해서 경기침체나 불황에 빠지는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책 『성장의 한계』(도넬라 H. 메도즈 외)에 제시된 다음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와 오늘날 경제침체에 빠진 사회의 차이를 비교한다면, 일부러 브레이크를 밟아서 자동차를 멈추는 것과 자동차가 사고로 벽에 부딪쳐서 멈추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어느 순간 갑자기 한계를 초과한다면 모든 사람과 기업들은 곧바로 예상치 않은 상태에서 재교육을 받고 재배치되거나 재조정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신중한 이전은 모든 사람들과 기업들이 새로운 경제체계 속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충분히 천천히, 그리고 충분한 사전조정을 거쳐 진행될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경제침체에 빠지기 이전에 저자는 부동의 상수로 제시되던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내려놓고, 정책 수립의 기준이 되는 축 자체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기존의 사회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를 질문해왔다면, 이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두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요인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가 아닌 ‘기업의 편의’가 기준이 되는 배출권거래제와 이윤 추구가 본질인 기업의 ESG 활동에 기댄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은 유의미한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악화된 기후위기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무한한 성장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더 이상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생태경제학은 ‘지구 생태계에 소속된 인간’으로서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게끔 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안적인 틀을 안내한다.
*표지 속 달팽이 사진은 책 『탈성장 사회』(세르주 라투슈) 속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사유를 참고하여 선정하였음을 밝힌다.
“달팽이는 섬세한 구조의 껍질을 겹겹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키우고 나면 껍질 만들기 활동을 갑자기 중지하거나 줄여 간다. 소용돌이를 한 번 더 하게 되면 껍질의 크기는 16배나 증가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안정된 생활은커녕 무게의 부담이 지나치게 된다. 그때부터 증가된 생산성은 모두 그 합목적성에 의해 정해진 한계 이상으로 껍질의 확대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에 쓰이고 마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 점에서 과잉 성장에서 오는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는 반면 달팽이로서의 생물학적 능력은 기껏해야 산술급수적으로밖에 증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