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2024)

코랄리 파르쟈 감독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by 위버금

서브스턴스(2024) | 코랄리 파르쟈 감독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EXTREME CLOSE-UP

독점 자본 아래서 형성되는 문화 산업은 현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문화 산업 속 산물들이 지니고 있는 상품적 성격은 인간 허위 욕구와 수용자들의 소비 욕구를 부추기고, 소위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기묘한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이를 보는 대중들은 자신도 신데렐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하나의 환상을 꿈꾸고, 소비자들의 환호에 힘입은 산업은 사회적 교양을 상실한 채 자신들의 자본을 증식시키는데 집중한다.


무질서의 증가는 야만적인 상태를 지속 가능케 하지만, 이를 예술적으로 포장한 미디어는 더 이상 실제 세계나 경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팬텀의 세계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의 인간은 존재적인 모호성과 가상의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현실과 기묘한 대치 관계를 맺으며, 현실을 변화시키고, 실제와 대척점의 위치에 서서 존재를 인식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매스 미디어는 빠른 속도와 증강 현실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현실 공간이라는 개념을 무화시켜 버린다. 존재의 소멸은 편협된 시각을 강화시키지만, 이미 생활 속으로 파고든 급진적 변화는 자기 정립성을 상실한 대중들에게 있어 문제를 인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상호 이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인간은 더는 주체일 수 없으며, 미디어가 뱉어내는 정보의 홍수 안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부품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들은 자기 해방의 가능성을 망각하고, 탈출구를 스스로 막아버림으로써 가상의 공간 혹은 인물 속의 자신에게 이입한다. 그렇게 미디어가 흡수한 인격체라는 존재는 실제 하지 않는 비물리적인 폭력성을 내재한 채, 비억압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이 축조한 사고방식과 인식체계를 강제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


매체의 상징으로 분류되는 하비의 익스클로즈업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가장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극 중 제작자인 하비는 매스 미디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눈과 입, 손 그리고 과장된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미디어가 갖는 폭발적인 자극과 폭력성을 대변한다. 그는 출연자이자 자신에게 고용된 인물인 엘리자베스와 수에게 상반된 반응을 보임으로써 앞서 언급한 체제를 강화시킨다.


그는 일말의 미안함 없이 엘리자베스에게 해고를 명하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새우의 머리를 ‘까’ 버리고, 소스를 ‘듬뿍’ 찍어 자신의 입 안으로 밀어 넣어 ‘씹어’ 삼킨다. 이 과정에서 비춰지는 극도의 클로즈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내며, 마치 자신이 까발려져 씹히는듯한 극한의 경멸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수를 향해지어 보이는 웃음은 젊음과 인기, 생기에 열광하는 대중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한껏 과장되다. 그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때문에 격주로 일 할 수 있다는 수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이라는 포장지는 곧 하비의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 SUBSTANCE

명예의 전당 거리에 이름을 올릴 만큼 인기 스타였던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이제는 한물간 왕년의 스타다. 그녀는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근근이 이어나가지만, 한순간에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박힌 광고판이 찢겨 나가는 것을 목격하다 교통사고를 낸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방문한 병원의 남자 간호사로부터 건네받은 코트에 들어있는 USB를 재생시킨다.


서브스턴스, 7일 동안 새로운 자신과 현실의 나를 번갈아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USB속 메시지를 그녀는 고민 끝에 받아들인다. 노스 바이런 앨리 35번가로 향한 엘리자베스는 그곳에 있는 의문의 박스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1번 활성제를 자신의 팔에 주사한다. 엄청난 고통과 정신적 충격 끝에 탄생한 젊은 육체,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뚫고 나온 새로운 여자는 그렇게 실존하는 인물로 재탄생한다.


그간의 경험에서 오는 진행 실력과 신선한 얼굴이라는 젊음까지 더한 ‘수’는 단박에 하비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로 인해 엘리자베스와 수는 7일간 삶을 바꾸어 살며 현실의 나와 새로운 나를 전환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수의 삶이 화려해질수록 엘리자베스의 삶은 초라해져만 간다. 그녀는 본체인 자신으로 살아가는 7일이 너무나 무료하게 느껴지고,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수는 욕망의 깊이를 더해간다. 결국 수는 7일이라는 규칙을 깨고,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척수를 더 뽑아내며, 수로서의 삶을 연장해 버린다.


수의 주위에 들끓는 수많은 남자와 관심과 사랑을 그녀는 온몸으로 만끽한다. 엘리자베스를 대체한 그녀의 쇼는 대박을 치고, 이로 인해 그녀는 저녁 토크쇼에 출연하고, 새해전야제 호스트까지 맡게 된다. 쉴 틈 없이 다가오는 기회 앞에 수의 폭주는 그칠 줄 모른다. 인기에 도취된 수는 전환이라는 규칙이 그저 성가시다.


반면, 엘리자베스의 폭식 역시 날로 심해져 간다. 수가 만개할수록 피폐해져 가는 엘리자베스는 수에게서 뽑힌 척수만큼 늙어버려 비참해진 스스로를 감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던 오랜 친구와의 약속을 깨고, 기괴한 닭요리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며 7일을 보낸다. 동시에 수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도 증폭시켜 간다. 자신의 척수를 빼앗아 젊음을 유지하는 수를 타인 대하듯, 바라보지만 그녀가 가진 사랑스러움을 아주 외면하지 못한다. 그녀 또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는 엘리자베스에게서 빼낼 수 있는 척수의 양을 모두 빼내어 써버리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듬성듬성 빠져버린 이와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닳아버린 연골과 쭈글쭈글한 피부만을 갖게 된다. 젊음을 대가로 바친 그녀의 늙음은 본질을 잃어버린 채, 더는 지속 할 수 없는 본체만을 남기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생에 좌절하고, 서브스턴스를 중단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종료를 알리는 주사를 수의 몸에 투약하는 순간에 마음이 약해진 그녀는 약물 투여를 중단한다. 그때, 수가 깨어나고 두 사람은 동시에 존재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을 맞이한다.


3. REMEMBER, YOU ARE THE ONE!!

그들은 서로를 오가며 양단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자신에게서 서로를 떼어내려 애쓴다. 달라진 삶만큼 극을 향해 달리는 양가감정은 서로를 겨누고, 당신은 하나임을 기억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는 두 사람에게서 점점 잊혀져 간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분신이 수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수 역시 본체인 엘리자베스의 삶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인식의 기반이 흔들리면, 인간이 가진 정체성은 모호해진다. 게다가 두 개의 육체를 가진 하나의 개인은 더욱이 그렇다. 유일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갈라진 삶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자신의 입장을, 존재를 증명하려 애쓴다. 한 사람이지만, 둘로 나뉜 엘리자베스와 수의 긴장 역시 이것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신체로 개별적인 경험을 하는 개인이 뒤틀린 자아를 갖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새해전야쇼를 코앞에 두고 두 사람의 갈등은 극을 향해 치닫는다. 주객이 전도된 본체와 분신의 인생은 영광과 공허함이라는 간극만큼이나 치열한 대결 구도에 입각한다. 자신을 없애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수는 늙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엘리자베스를 향해 자신의 화를 표출하지만, 그녀가 없이 자신 역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엘리자베스의 척수를 모두 써버린 수는 이빨이 빠지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등의 신체 붕괴를 경험한다. 수가 가진 것이라고는 모두가 열광할 아름다운 육체뿐이므로, 이것을 잃어가자 공포에 휩싸이고 점차 인지능력을 상실해 나간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피가 흐르는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을 위해 1회용이던 활성제를 자신의 몸에 주사한다.


그 결과 엘리자수가 탄생한다. 뒤틀리고,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눈과 코와 입이 ‘제자리에 붙어 있지 않은’ 괴물이 수의 몸을 찢고 태어나 대중들의 앞에 선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장한 엘리자수는 기괴한 음성을 내며, 여성의 유방을 배출하고, 오르골 속의 인형과 같이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자신을 보러 온 관객들을 향해 많은 양의 피를 분출해 낸다. 이러한 괴물의 탄생은 오직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가 다 함께 만든 구조적인 문제라는 듯, 그녀가 토해내는 유혈은 사방으로 튀어 모두의 얼굴에 난사된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외모에 충실하려 했던 한 개인의 욕망에 따른 결괏값이라 볼 수 있다. 바디호러라는 장르로 규정지어진 서브스턴스는 일시적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본질을 잃어버린 한 개인이 괴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빚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욕망의 밑바탕에는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사회, 그것에 열광하고 추앙하는 대중의 열망이 진하게 깔려 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미(美)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이다. K-뷰티의 유행과 관심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평화 아닐까. 엘리자베스가 고등학교 동창의 약속에 나갔더라면, 나이 들어감의 자연스러움을 겸허히 받아들였다면 이 같은 비극은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화는 누구나 겪는 자연의 섭리니까 말이다. 물론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영원한 젊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탱탱한 피부를 가진 인간 일 수는 없다. 다만, 지나온 시간을, 삶을 긍정할 때, 조금 더 평안해진 현재를 인정할 때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치 있게 발현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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