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 감독 | 니콜 키드먼, 해리엇 안데르손, 로렌 바콜
도그빌(2003) | 라스 폰 트리에 감독 | 니콜 키드먼, 해리엇 안데르손, 로렌 바콜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마을이 있었다. 록키 산맥의 오래된 폐광 옆, 막다른 국도 끝에 위치한 이 동네는 노동하고, 식사하고, 수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15명으로 구성된 주민들은 장애와 가난, 무직, 외로움이라는 그늘 아래 살았고, 이는 곧 인간사라는 외피를 획득하게 만든다. 빼곡하게 들어찬 거주공간이 말해주듯, 그들의 일상은 밀도가 높았다. 그래서 살림을 사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도, 형편은 쉬이 편해지지 않았다. 그저 낮을 보내고, 밤을 지내는 매일을 살았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칭 작가인 톰은 그날도 어김없이 몽상에 젖어 있었다. 훗날 작가가 된 자신을 상상하며, 그의 책이 끼치게 될 엄청난 파급과 그로 인해 감화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수용의 미덕을 설파하고자 했고, 벤치에 누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실례를 찾아헤맸다. 허황하지만 시간을 흘리기에 맞춤인 톰의 도취경을 깬 것은 갑작스러운 총성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발을 옮긴다.
그레이스는 총성이 지나간 자리에 도망자의 신분으로 등장한다. 톰은 낡은 폐광으로 안내해 갱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도그빌에서의 정착을 제안한다. 톰에게 있어 그레이스는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실례의 현실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날이 밝자 마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주민회의에서 인정에 호소하고, 책임을 강조하며 편입을 향한 2주간의 관찰 기간을 이끌어낸다.
이방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를 오간다. 눈길을 주면서도 직접 마주하지 않고, 무심한 듯 모든 사항을 주시한다. 애초에 무게 추가 기울어진 관계였으므로 그녀의 진심에 관해서라면 모두가 재판관이나 다름없었다. 2주 안에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하는 그레이스는 더 낮은 자세로, 더 상냥하게 사람들을 대한다. 그들은 그녀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만, 반복된 요청에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베푼다. 그리고 그 노력이 닿아 그녀는 15번의 종소리, 즉 만장일치 표를 얻어낸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목사관에 실종자 포스터가 붙는다. 경찰은 그레이스의 얼굴이 박힌 벽보를 가리키며, 신고는 준법임을 공고한다. 경찰의 방문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는 불안이 싹튼다. 동시에 개인적인 호감과 시민의 의무 사이에 끼여 난처해진 자신들의 입장을 실감한다. 톰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불만의 소리를 신뢰를 제창하는 것으로 잠재운다. 그러나 인내는 오래 가지 못한다. “Wanted!" 실종자가 용의자로 전환된 까닭이다.
“촌이건 도시건 인간은 다 똑같아. 탐욕스럽지. 촌에선 풍족하지 않으니까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오.”
불안과 두려움의 공기가 사람들의 허파 속으로 스며든다. 호감은 너무나도 쉽게 증오로 바뀐다. 법을 어기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들을 무례하게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반으로 줄어든 임금으로 2배의 노동을 요구한다. 그레이스가 바라는 것은 그들의 진심이지만, 어떤 진심은 조건으로 통한다. 그녀가 받아들인 새로운 조건은 변해버린 민심과 매일반이다.
대가라는 이름의 가해는 계속된다. 한 사람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착취는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간다. 노역과 추행, 강간, 폭행이 그녀의 일상이 되고,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상대의 곤경을 이용해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조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공적인 명분 아래 은폐된다. 야만적인 행태는 노골적으로 변해가지만, 그들을 견제할 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제 없는 상황의 지속은 그들에게서 수치를 앗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녀는 자신에게 행해지는 이 모든 실태들을 용서한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개개인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그녀는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녀 자신만은 사랑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사랑인가. 어떤 측면에서 그녀는 톰보다도 더 이상적인 인물이다.
끝없는 자비는 그들을 짐승으로 만든다. 인간은 악해서라기보다 나약해서 나빠진다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있는 자체로 나쁘다. 인간성이 사라진 내면엔 양심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악의는 무감해서 거리낌이 없고, 악행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된다. 조건없는 이해와 장애 없는 본능의 만남은 미개한 상황 일색이다. 기울어버린 관계의 저울은 이제 직각을 이루어 종속의 단계로 넘어간다,
결국 그레이스는 탈출을 감행한다. 톰은 그녀의 탈출 자금 마련을 위해 아버지의 돈에 손을 대고, 도둑으로 몰리자 그녀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녀의 탈출 소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트럭에 숨어 마을 밖을 나갔던 그녀는 다시 도그빌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탈출에 실패한 그녀에게 절도 혐의와 더불어 종이 달린 쇠목줄이 채워진다. 기진한 그녀는 부당함마저도 체념한다.
“다른 사람처럼 해요. 경찰에 갱단에 넘긴다고 협박해요. 당신은 자신을 못 믿나요? 당신도 그런 인간일까봐 두렵나요? 모든 건 시간에 맡겨요. 자신을 못 믿는건 죄가 아니지만, 믿는다니 잘 됐어요.”
그녀의 편을 든 유일한 인물이었던 톰마저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얄팍한 도덕성을 가진 자신을 들켰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분노 에너지로 바꾼다. 톰은 곧장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총성이 울리던 날 건네받은 명함을 꺼내들고, 주민회의가 열리는 회의장으로 걸어간다. 회의장을 가득 채운 마을 사람들은 최종수습책에 대해 논의한다. 그들은 자신이 벌인 죄악의 집합체인 그레이스가 두렵고, 불편하다.
낯선 방문객이 도그빌에 도착한다. 그레이스는 익숙한 엔진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연스레 차량에 탑승하는 이 장면에서 목소리로 출연했던 갱단의 보스가 그레이스의 아버지임이 밝혀진다.
“제가 오만한 건 용서하기 때문인가요?”
“세상에! 그 말이 얼마나 오만한지 아니? 저들은 나 처럼 고고한 성품을 가질 수 없으니 면제해 주자 이보다 더 오만한 게 어디있니? 넌 너무 쉽게 사람들을 용서하고 있어.”
“인정이 많은게 죄예요?”
“인정을 베풀 땐 베풀어야지. 단, 네 기준을 잃어서는 안 돼. 넌 그 점에서 잘못한거야. 네가 받아 마땅한 벌은 그들도 받아 마땅해. 인간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 근데 넌 그들에게 기회조차 안 줬어.”
인간은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세상의 규칙, 인간의 조건을 알게 된다. 관용은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통용되는 것이며, 그 이상의 인정은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무지와 다름 없다. 불완전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결핍이고, 질서 없는 세상을 외면한 완벽한 방임 행위다.
푸른 달빛이 마을을 비추자 그레이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도그빌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권력과 책임, 마을 사람들의 공포심을 감각한다. 주객이 전도되자 모든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도그빌을 향해 사용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멸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오직 개 모세만이 기적처럼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