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 | 이자벨 아자니, 샘 닐, 마기트 카스텐슨
포제션(1981) |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 | 이자벨 아자니, 샘 닐, 마기트 카스텐슨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크가 돌아왔다. 궤(軌)를 벗어난 세상 속으로. 극지에 머물다 돌아온 세계는 무너져야 할 거대한 벽과 온전해야 할 무너진 건물들로 자신의 밑바탕을 재구성했고, 대전(大戰)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표식이 되어 살아남은 자들의 배경으로 각인되었다. 비록 그것이 상흔이라 할지라도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엔 탈각의 허물들로 가득하다.
마크 vs 안나 vs 하인리히
택시에서 내린 마크는 자신을 반기지 않는 아내를 마주한다. 장기 출장으로 인한 자신의 부재가 부부 사이에 끼친 영향에 대해 실감한 그는 가정을 지키겠다는 명목 아래 스파이 활동을 그만둔다. 그러나 이 같은 결단에도 아내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 마크는 안나가 외출한 틈을 타 집안 곳곳을 뒤지다 엽서 한 장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내연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나의 이별 통보는 마크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든다. 그는 호텔에 홀로 누워 말하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3주를 보낸다. 마크는 안나에게 재결합을 요구하지만, 안나는 마크의 제안을 거절한다. 비록 그들의 결혼생활이 강을 건너버렸어도, 부모의 역할은 여전하므로, 마크는 아들 밥의 등원을 돕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초록 눈의 유치원 선생님, 헬렌을 만난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함은 영화 전반에 포진되어 있지만, 예사로움으로 인해 눈에 띄지 않는다. 옳고 그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언제나 선의 역할이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쪽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헬렌은 마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마크가 일련의 사건을 겪는 동안, 밥의 보호자 역할을 대신하며, 소리 없이 안나의 자리를 침노한다.
안나의 마음을 돌리려는 마크와 마크를 밀어내는 안나의 싸움은 고성 위에 혐오를 더해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덜 수고로울 갈등의 줄다리기는 유혈극으로 이어지고, 가정을 지키고픈 마크의 절절한 외침에도 안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거리의 추격전은 뜻밖에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충돌하는 파열음과 함께 전복된 차량은 안나의 내면에 해일을 일으키고, 심연에 머물렀던 흑막이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결국 마크는 탐정을 고용해 안나의 뒤를 캐기로 결심한다.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안나와 이 같은 사실이 답답한 마크는 별다른 해결책 없이 제자리를 걷는다. 고통은 배를 더해가고, 나날이 쌓여가지만 풀어낼 방법이 없는 두 사람은 자해의 방식으로 내면의 고통을 외적으로 표출시킨다. 그들은 침착하지도, 대화하지도 못한다. 그저 날치며, 울부짖을 뿐이다.
안나 vs 괴물 vs 안나
식료품을 잔뜩 사들고 지하철에 오른 안나는 제3의 장소로 향한다. 탐정은 안나의 뒤를 밟으며, 그녀의 행적을 마크에게 보고한다. 그는 깨진 유리를 핑계 삼아 안나가 거주하는 집안으로 들어서고, 또 다른 남자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어두운 복도를 지나 보이는 것은 핏덩어리 생명체다. 점액질의 형체를 발견한 놀라움도 잠시 탐정의 등 뒤로 깨진 와인병을 든 안나가 다가온다. 이내 첫 번째 살인이 시작된다.
그 시각, 마크는 새하얀 욕실 안에서 욕조에 몸을 담근 아들 밥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런 그를 밥의 유치원 선생님과 하인리히가 차례로 방문한다. 일전에 하인리히를 찾아가 크게 다투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안나의 새 애인으로 인해 공생관계로 변한다. 단지, 신을 두려워하는 하인리히와 신을 일종의 질병으로 여기는 마크의 이데올로기만이 상충하는 상태로 남아 있다.
사라진 자신의 사랑을 찾아서 크로스버그를 찾은 젊은 탐정은 어둠의 세계로 진입한 안나의 상태를 단박에 알아챈다. 자책을 버리고 죄를 행하는 그녀에게 손쉬운 평화가 찾아왔음을 인식한다. 그녀의 행보가 악을 닮아 변화하는 것이라면, 선과 악은 하나의 개체에서 둘로 파생되는 것인가, 양분된 이념이 하나의 개체 안에 존재하는 것인가. 영화는 앞선 두 가지의 전제 모두를 정답으로 채택한다.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안나와 안나가 만드는 괴물이 그것이다.
그녀에게도 과도기가 있었다. 비디오 영상 속 안나는 ‘무조건적’ 믿음과 ‘맘대로 하는’ 기회라는 이름의 두 자매에 관해 언급한다. 마크의 부재를 틈타 그녀의 외로움 속으로 파고든 무법(無法)한 기회는 절대(絕對)적 믿음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린다. 힘과 욕망과 공포가 한데 어우러진 신세계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안나는 기회가 주는 자유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으며,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떠나 온 길을 바라보게 된다. 선은 악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뒤집힌 사고와 함께 말이다.
세계가 전복될 때, 인간은 거꾸로 매달린 형상이 된다.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은 선의를 나약함으로 규정짓고, 이를 일시에 제거하거나 피해자의 위치로 지위를 격하시킨다. 하늘을 딛고, 땅을 이고 선 자들의 비명이 이명처럼 번져가고, 빨라진 박동으로 인해 압력은 높아져만 간다. 혼란한 대기를 틈타 기조를 바꾸는 이들이 생겨나면 압박을 견디는 이들 사이의 대립은 한층 심화된다.
안나의 고백이 담긴 영상을 보고 난 이후 마크는 두려움과 죄의식 사이의 괴로움에 공감한다. 결국 상처받는 것은 그녀의 영혼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안나의 내전은 끝나지 않는다. 전쟁에 지친 그녀는 신을 찾아가 구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죽은 듯, 자는 듯 평온한 예수의 얼굴은 자신의 고요 이외엔 관심이 없다.
교회를 나와 크로스버그로 향하던 지하철역 안에서 안나는 양가의 대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고함과 몸부림 끝에 유산을 하게 된 그녀에겐 기회만이 남는다. 변질된 그녀를 보며 마크는 유년의 어느 때를 떠올린다. 두려움에 떨며 죽음을 맞이하던 개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내질렀던 비명을 기억해낸다.
안나를 찾아간 하인리히는 연체동물에서 사람의 형체로 성장한 괴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앞서 죽은 두 사람의 시체가 토막 난 채로 보관되어 있는 냉동고를 보고 경악한다. 악을 완성해 나가는 안나의 눈에 인간은 고깃덩어리 그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살인이 아닌 도축에 가깝고, 그렇기에 가책이 없다. 죄의 편으로 돌아선 그녀에게 평화가 찾아온다.
안나 vs 괴물 vs 마크
안나의 살의를 피해 도망친 하인리히는 마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안나의 심경과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마크는 하인리히보다 여유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냉동된 사체와 안나가 머물던 장소의 검은 에너지를 몸으로 겪자 마크 역시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호흡이 어려워진 마크는 환기를 위해 창을 열고 잠시 숨을 고른다. 동시에 그는 안나를 위한 새로운 결심 한다.
"신이 불로 복수 하신다!'
바에서 만나 도움을 청하는 하인리히의 머리를 내려쳐 살해한 후, 안나와 괴물이 머물던 거처에 방화를 저지르며 외친다. 마크는 아내의 불륜을 살인으로 되갚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함을 부여하고, 더러운 것을 모두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고픈 욕구를 발현시킨다. 이 같은 태움은 안나를 향한 사랑이 공감을 넘어 공모로 이어짐을 암시한다.
집으로 돌아온 마크는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 안나와 마주한다. 안나는 자신처럼 죄(살인)를 저지르고 돌아온 마크의 윗옷을 벗겨 마크가 아들 밥을 바라볼 때와 같은 눈길로 바라본다.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길말이다.
마크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개가 죽어가던 현관에서 보이던 유칼립투스 나무와 구름의 ‘그림자’로 풀색들이 ‘바뀌는 것’을 관찰하던 그때를 되새김질한다. 마크는 이미 목격한 적이 있다. 안나가 악의 '그림자'라 믿는 '선'이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장면을. 느린 속도일지라도 분명 풀의 색깔은 변해갔었다.
“내 아들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난 아들의 편이 돼줘야 해요.”
“난 첫 아내도 좋았지만, 안나도 좋아했어요. 둘 다 좋아해야만 했어요. 모두 내 아들을 사랑했으니까요. 세상은 다 그런 거죠. 잔인하지만 이겨내고 살아야죠.”
처음으로 선악의 정도 즉, 상대적 개념이 등장한다. 도덕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윤리 혹은 관계 안에서 선악의 구별은 그 존재로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가깝다. 그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택을 달리할 뿐, 변하지 않는 윤리나 모두에게 이로운 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다움은 고정값을 갖지 못한다.
“물에 빠진 개보다 세상을 파멸에서 구해야지.”
“세상을 사랑했던 남자를 만났는데, 비참하게 죽었소. 어렸을 때, 루이라는 개를 키웠었죠. 현관까지 기어 와서 죽었을 때, 난 그 옆에 있었죠. 개가 무슨 힘으로 그곳까지 기어 왔는지 알고 싶었어요.”
사고를 가장해 안나의 마지막 살인을 모두 덮은 마크는 감시자들의 총에 맞고 도망치고, 죽어가는 마크의 곁으로 안나가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완성시킨 괴물을 그에게 선보인다. 초록 눈을 가진 마크이다. 마크는 초록 눈의 마크를 향해 총을 겨누지만, 그보다 한 발 앞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린다. 이로 인해 안나의 목숨도 위태로워진다. 멀쩡한 것은 초록눈의 마크뿐이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마크의 곁에서 안나 역시 자살을 시도하고, 그녀가 만들어 낸 마크만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인간은 죽고, 인간이 만든 악만 살아남는 결말이다.
추락한 마크의 시체를 누군가가 발견한다. 남자는 마크의 목표물이었던 핑크색 양말을 신은 사나이다. 핑크 양말과 핑크 넥타이를 한 그 남자는 붉은 넥타이와 붉은 양말을 신고 있던 마크의 동료와 동일한 외형을 갖고 있다. 세상을 구하자고 회유책을 펴던 사내에게도 그 자신을 질료로 삼은 또 다른 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초록눈의 안나와 함께 머물던 아들 밥은 초인종 소리에 자리에서 도망친다. 그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물이 담긴 욕조로 자신의 몸을 숨긴다. 이윽고 공습 사이렌과 함께 전투기 포탄 ‘소리들’이 그들의 거주지를 공격한다. 소리와 빛으로 표현된 전쟁은 초록눈의 안나와 초록눈의 마크만을 남긴다. 죽지도, 상처 입지도 않는 그들만이 세상에 남아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한다.
내부적으로 이루어지던 선과 악의 갈등이 외부적인 형태로 빚어지면, 전쟁으로 이어진다. 생각으로 존재하던 악이 물질과 만나면 구체적인 사건으로 변모한다. 감시자라는 이름의 악은 호시탐탐 인간의 연약함을 노리고, 그의 내부에 침투해 숙주로 만들 궁리를 벌인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