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ㅗㅅㅓㄱㅇㅡㄹㅇㅓㄴㅈㄷㅏ
어느 날, 갑자기 피어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장 홍대로 향했다. 폐점 알림판과 군데군데 불 꺼진 상점들 사이에서 OPEN 푯말이 걸린 피어싱 가게를 찾아냈다. 꽤 규모가 있는 그곳엔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의 액세서리들이 있었다. 나는 미리 찾아본 연예인 사진과 벽에 붙은 샘플들을 참고해 큐빅이 박힌 피어싱 두 개를 골랐다.
"조금 따끔하세요"라는 말 뒤에 뚜둑! 소리가 이어졌다. 금세 귀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얼얼하고 뜨끈뜨끈한 기운이 귓바퀴를 통통하게 만들었다. 거울에 비춰본 오른쪽 귀는 반짝이는 보석이 얹어진 후랑크 소세지 같았다.
후끈하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고를 샀다. 예쁜 피어싱 위치를 검색했고, 귀 사진을 열댓 장 정도 찍었다. 하루종일 피어싱 브이로그를 봤다. 귓바퀴가 욱신거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재정상태에 대해서, 풀리지 않는 원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피어싱은 또 다른 형태의 자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내부에서 외부로 고통의 위치를 옮긴 것이었다.
이후, 관리 부족으로 귓바퀴에 낸 구멍 하나가 막혔고 두 개를 더 뚫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다 수건올에 걸려 비명을 지르면서도 또 다른 피어싱 자리를 찾아 눈을 돌렸다. 예뻐서 좋았고, 아파서 더 좋았다. 피가 맺히고 고름이 고이는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어찌야됐건 아물 테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회복이 될 테니까. 그러나 나의 현실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복구 중이다. 스스로 코로나 타격이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완전히 망가져버렸던 인간관계의 영향이라 보는 게 옳다. 때마침 역병이 번져 거리 두기라는 변명거리가 생겼을 따름이고, 고립을 자처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복구공사가 조금 많이 길어지고 있다.
다행히 요즘은 매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브런치 기록이 뜨문뜨문인 것도 현생을 사느라 온라인에 방문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체력이 달려서 무거워진 눈꺼풀에 잠가루가 뚝뚝 떨어진다. 눈뜨면 일하고, 감으면 잠드는 꽤나 건강한 생활을 영위 하고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할 일들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손 놓고 자포했던 그때보다는 아무래도 지금이 낫다.
그때 뚫은 피어싱 자리는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다. 되려 피부 같다고 느낄 정도로 자연스러운 액세서리가 됐다. 연고를 덕지덕지 발라대던 기억은 저만치 달아나고 없다. 역시 상처 난(혹은 낸) 자리도 시간이 약이다. 볕이 좋은 날도 눈보라가 치는 날도 계속되지 않는다. 기상은 언제나 변한다. 삶도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