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에 오르다.
이것은 나의 MRI 사진이다. 저기 보이는 빨간 동그라미가 자궁이고, 양쪽에 있는 파란 동그라미가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해 왔던 통증의 원인이며, 고통의 바탕이자 오늘날의 내가 제거해야 할 혹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초음파 사진으로 봤을 땐 그다지 와닿지 않던 혹의 크기가 MRI상으로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궁과의 차이를 보라! 4배나 크지 않은가.
의사 선생님 曰 배가 혹으로 꽉 찬 상태입니다.
이 말이 정답이었다. 나잇살이라 여겼던 아랫배의 실체는 지방이 아닌 종양이었고, 배 한가득 자리를 잡을 때까지도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무심한 건지, 둔감한 건지.
무튼! 입원을 했다. 의대 정원 확장으로 인한 정부와 의사 사이의 줄다리기 복판이었다. 행여나 수술 일정이 취소될까 맘 졸이며, 병실 배정 알림 문자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나였다. 다행히 예정대로 스케줄이 진행되어 바리바리 챙겨 온 짐 꾸러미를 풀어낼 수 있었다.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병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환자 수가 많지 않았다. 실내도 넓고 깨끗했다. 간병을 자처했던 동생이 보호자 자격으로 도착했고, 이윽고 채혈과 수액바늘이 손목에 꽂혔다.
수술 전날 밤은 관장을 하며 보냈다. 물배를 채우고, 비우고, 물로 배를 채우고, 비워내며 내장의 찌꺼기를 몸 밖으로 빼내었다. 항문으로 소변보는 것 같은 불쾌함과 뒤처리를 위해 연신 닦아대는 탓에 얻게 되는 따끔거림은 얼마 남지도 않은 기력을 다하게 만들었다. 링거줄을 치렁치렁 매단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다시 화장실로 직행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점에 잠들었고, 동이 트는 걸 봤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수술은 오후 1시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동생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주린 배를 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뒤돌아 본 그곳엔 수녀님 한 분이 서 있었다. (천주교 재단의 병원인지라 수녀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오늘 수술을 하신다고요?"
"네에....(어떻게 아시지?)"
"환자분께 기도를 해드리고 싶어서 왔는데요?"
"저는... 기도 신청 안 했는데요?"
"조금이나마 평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잠깐만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얼떨결에 기도가 시작됐다.
"하나님 아버지...@#^%* 어쩌고 저쩌고"
신자도 아니고, 기도도 내키지 않았는데... 등에 닿았던 수녀님의 손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얇은 환자복 위로 얹힌 손바닥의 온도가 굉장히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내내 말씀은 안 듣고, 손바닥만 느꼈다. 핫팩을 쥐고 계셨나, 붕어빵 봉지를 안고 계셨나, 그것도 아니면 진짜 마음의 온도가 높은 사람인지도. 기도빨이 먹힌 건지 모르겠지만, 뒤늦게 수녀님의 제안이 무척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를 직접 찾아와 쾌유를 빌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전쟁을 앞둔 병사처럼 압박스타킹을 신고, 상의를 거꾸로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한번 더 들렀다. 떨리지는 않았다. 전신마취를 할 것이니까. 씩씩하게 걸어 직원의 지시에 따라 이동식 침대로 옮겨 누웠다. 복도의 전등이 지나가고, 동생의 응원 소리를 듣고, 수술실이라고 쓰인 자동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대기실이 나왔다. 거대한 병실처럼 생긴 그곳엔 나처럼 수술을 앞둔 사람들이 침상에 누워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에선 바로 수술실이던데?)
또! 이름과 나이, 수술받는 부위, 혈액형 등을 말했다. 환자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병명과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래, 확실한 것이 좋지. 맹장을 떼버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20여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영등이 켜진 공간 속으로 들어갈 때가 된 것이다.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각종 모니터에 떠 있는 알 수 없는 숫자들과 눈만 내고 서 있는 의료진들의 분주함이 되려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은 상의의 단추를 등에서 풀고, 수술대 위에 나를 눕혔다. 그리곤 덮여있는 상의 아래로 손을 넣어 쇄골과 갈비뼈 부근에 패드를 부착했다. 동시에 손가락에 집게를 끼우고, 주삿바늘을 꽂고, 이름과 나이, 병명을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000이요."
"(일동) 000 환자!!"
"오늘 어떤 수술받으시죠?"
"난소혹 제거요."
"(일동) 난소낭종 로봇 수술!!"
(다 같이 외치는구나! 되게 파이팅 있다.)
곧이어 호흡용 마취마스크를 쥔 손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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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