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이후의 일상에 대하여
눈을 뜨니 병실이었다. 해는 이미 기울어 어두워진 뒤였고, 창문에 반사된 내 모습이 실내 풍경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동생의 부름에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왔다. 그녀는 전신마취 후 생길 수 있는 합병증 예방과 폐 기능 회복을 위해 깊게 숨을 쉬라고 말해주었다.
"깨어 있으셔야 해요. 잠들면 안 돼요."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아니 뇌의 스위치가 꺼진다고 해야 옳겠다.
"언니야! 일어나! 자면 안 된다잖아"
곁에 선 동생이 10초마다 한 번씩 몸을 흔들어댔다. 그런데도 맥없이 눈이 감겼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다가 목소리에 깨어났다. 의지로 저항할 수 있는 기면이 아니었기에 동생이 없었다면 쭉- 잠에 빠진 상태로 새벽을 지났겠다고 생각했다. 지속적인 외부 자극 없이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호자의 역할이 중했고, 동생은 쉬지 않고 부름으로써 그 몫을 다했다.
환자복을 들춰보니 배에 난 상처가 세 개였다. (배꼽에 하나 양 옆으로 두 개) 상처 위에는 투명한 본드가 발라져 있었고, 칼을 받은 자국이 선명했다. 그것 말고 별 다른 특이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리를 쭉 뻗어 보았지만, 하체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단지, 꽂혀있는 소변줄이 거추장스럽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문제는 복부였다. 눕거나 앉거나 일어서거나, 체위를 변경하는 모든 행위에는 배 근육이 필요했다. 게다가 정신이 들어옴과 동시에 몰려오는 통증은 PCA(자가조절진통)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자리에 누워 있는 힘껏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이것이 진통제가 맞는가, 주입이 되고 있는가 의문스럽기만 했다.
붙어있는 장기 사이의 공간 확보를 위해 주입해 놓은 가스도 통증을 배가시켰다. 소위 가스통이라 불리는 이것은 배출되지 않고 체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때문에 누워있으면 어깨와 등이 아팠고, 앉으면 아랫배가 아팠다. 두 술 밖에 안 되는 식사량에도 배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이러다 터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내장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파열감과 찌릿한 동통은 겪어보지 않고 절대 알 수 없다.
걷는 것만이 답이라고 했다. 자꾸 걸어야 장운동이 활발해진다고. 수면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수술 이튿날부터 복도를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몸상태가 조금 나아져 오후에는 병동을 한 바퀴 완주 할 수 있었다.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르게 나아진다던 수간호사님의 말씀처럼 아침에는 일으키기도 벅차던 몸이 저녁에는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 됐다. 몸 안의 가스는 여전했지만,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게 어디랴 싶었다.
입원생활은 매우 편안했다. 아픈 것만 빼면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었다. 남의 손으로 차린 밥상을 받고, 원하는 때에 침구 정리를 부탁하고, 갈 때마다 윤이 나는 화장실과 늘어지게 자는 잠. 이보다 더 사치스러운 생활이 있을까. 타인의 노동으로 영위되는 일상이 제일 고급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가만히 앉아 의식주를 제공받는 3박 4일이 호화롭기만 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 하긴 했지만, 상품이 아닌 인건에 셈을 치르기는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정승같이 산다는 건 가사 노동에 돈을 쓴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하구먼...)
통증과 안정 사이를 오가는 날이 지나고 입원 4일 차에 퇴원을 했다. 회복이 빨라 가스통만 빼면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더부룩함은 계속 됐다. 먹은 것이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는 게 당연했지만, 복부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나와야 할 것이 못 나왔다. 배변활동을 하기 위한 복압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해야 하는 것이었고, 횡격막에서부터 괄약근까지 장기의 근육을 모두 사용하지 않으면 내부의 공기를 밀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코어의 중요성을 배설에서 느낄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에 드는 품도 많이 줄어들었고, 배도 덜 당긴다. 아직 본드 발린 상처는 그대로지만, 흉터연고만 잘 발라도 크게 눈에 띄진 않는다고 하니 관리에 힘쓴다면 이마저도 괜찮을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외래검진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떼어낸 혹과 말끔해진 난소 사진을 보여주었다. 비록 (자궁내막증 예방을 위해) 매일 복용해야 하는 호르몬제를 처방받았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사고 없이 수술일정을 잘 마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올해는 건강하자. 제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