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니까, 할 일을 해내야지!
사진첩을 보면 그 시기의 관심사가 눈에 보인다. 재작년 여름엔 조성진에, 전년도 가을엔 스탠리 텀블러에 꽂혔었다.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는 호기심이고, 그 대상이 사물일 경우 구매로 이어진 뒤, 시들해지고 마는 그런 류의 관심들이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저장되어있는 사진이 있다. 바로 물에 관한 이미지다. 수영하는 사람, 윤슬, 심해로 떨어지는 잠수부, 부서지는 파도 등등.
파랑과 빛이 어우러진 그림에 이끌리는가 싶지만, 저장된 날짜를 보면 열에 아홉은 심적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이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해답을 나는 5년 전 일기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고 인정했다.
"울고 싶어서"
비가 아닌 바다, 물장구가 아닌 잠수여야 했던 이유가 물에 푹 잠긴 채로 울고 싶기 때문이라는 걸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알려주었다.(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똑똑했나 보다.)
펑펑 울어 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의 나는 용을 쓰고, 맘을 쓰고, 힘을 쓰지 않고,
그냥 포기한다.
많은 것들을 체념한다.
그래서 울지 않는다.
그래도 미련이, 아쉬움이 남는 모양으로
밤이 오면
생채기 난 어느 자리를 뱅뱅 돌다가
콕, 눌러봤다가
쓸어도 보다가
울음을 참아보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잠들기 전의 얼굴을 하고, 집을 나선다.
이게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걷다
삶은 울면서 힘내는 것이라는 글귀를 보았다.
그리고 조금 울어도 힘을 내면 괜찮지 않나
라고 해석하였다.
올해는
많이 많이 건강하고.
울고 싶을 때,
조금 울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