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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버금 Apr 22. 2024

괴물(202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 소야

괴물(2023)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 소야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시점의 오류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미나토를 키우는 사오리는 요즘 들어 이상해진 아들의 행동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아들은 돼지의 뇌에 관한 말을 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기도 하며, 한 짝뿐인 신발을 신고 귀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동네를 돌던 사오리는 인적 드문 터널 아래서 미나토를 발견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들의 방황에그녀는 무던하려 애쓰지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병원 치료를 받게 된 미나토가 자신의 뇌가 돼지의 뇌로 바뀐 거라며 스스로를 괴물로 칭하자 폭발해 버린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 누구한테 들었어?”

“호리 선생님.”

사오리는 학교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에게 폭언을 일삼은 호리 선생에 대한 조치와 사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교사들을 일제히 오해가 있었다. 적절한 지도에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기계적인 답변만을 내놓는다. 수세적이고, 경직된 그들의 태도에 사오리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싱글맘이라는 사실과 과잉보호라는 해석이 더해져 이들의 면담은 점차 감정적으로 변질되어 간다.


“저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인간인가요?”


초등학교 교사인 호리는 화재가 발생하던 날,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였다. 여자친구와 함께 육교를 건너던 그는 뜻하지 않게 같은 반 아이들과 마주치고, 걸스바가 있는 건물의 화재사고 + 젊은 여자 결합으로 인해 걸스바에 출입하는 선생이라는 근본 없는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

며칠 뒤, 호리는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던 미나토를 말리다 아이의 코를 치게 된다. 그는 즉시 미나토의 상태를 살핀 뒤, 거칠게 행동한 이유를 묻는다. 그는 짜증이 나서 그랬다는 미나토의 대답에 잘못을 지적하며,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을 수습한다.


이 일이 있은 이후, 호리는 미나토의 엄마로부터 항의를 받게 된다. 동료 교사들은 편부모라는 가정상황과 중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호리의 미래를 언급하며, 적당히, 잘 마무리 짓는 게 좋다고 말한다. 호리는 교장에게 사고가 있었으며, 말리다가 그리되었다는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지만, 교장은 학교 전체의 처분을 피하기 위해 교사 개인의 잘못으로 묻고 인정하는 쪽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이튿날, 화장실에 갇혀 있는 요리를 발견한 호리는 화장실 주변을 맴돌던 미나토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이후, 미나토가 고양이로 장난치는 것을 목격했다는 키다의 증언에 힘입어 사오리에게 미나토의 학교 생활을 폭로하지만, 내용증명의 도착과 함께 상황은 호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불리해진다.

징계 위원회가 열리고, 호리는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식 사죄를 한다. 이로 인해 호리는 여자친구로부터 결별을 통보받고, 낯선 이들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등 사회에서 배척당하게 된다. 억울함에 북받친 그는 학교를 찾아가 미나토에게 왜 거짓을 고했냐고 추궁하고, 자신을 피해 도망하던 미나토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자 또다시 사고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힌다.


꼬여만 가는 상황에 모든 걸 포기하고, 이사를 준비하던 호리는 요리의 작문 숙제 속에 숨겨진 그들의 관계를 인지한다. 태풍이 오던 날, 호리는 미나토의 집을 찾아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엄마 사오리와 함께 사라진 두 아이를 찾아 나선다.


#2. 괴물의 얼굴 (1)

괴물은 시점의 오류와 보호구역에서 생겨난다. 사오리의 모성은 미나토를 교사에게 폭언, 폭행당한 피해자로 규정하고, 그녀의 손에 닿는 보호구역으로 이동시킨다. 그녀는 아들의 작은 몸짓과 말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피해를 입었다’라는 그녀의 시각은 자신의 아들 역시 폭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전제를 제외시키고, 아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에도 실패하게 만든다.


호리를 대하는 사오리의 태도 변화 역시 아들과 연관이 있다. 세탁소 손님으로부터 호리선생이 걸스바에 출입한다는 소문을 들은 사오리는 그의 외로움에 집중하지만, 미나토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호리의 외침에 걸스바라는 약점을 내세워 그의 부도덕함을 강조한다. 증명되지 않은 소문을 방패 삼은 그녀의 방식은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떼어냄과 동시에 이면의 시각이라는 해일에서 그녀 자신을 보호하는데 이용된다.


괴물은 호리의 편에도 찾아온다. 오탈자를 찾아내는 것을 취미로 둔 호리의 교정 강박은 틀리는 것에 대해 예민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미나토의 돌발행동에는 요리를 괴롭히는 동급생들의 행동이 선행되어 있었고, 호리는 언제나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 미나토를 발견한 것이지만, 미나토의 감정을 모르는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만 지도, 편달한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는 인물이기도 하여, 평탄한 수습을 위해 자신의 당위적 입장을 관철시키기보다 동료 교사와 교장의 지시에 따르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던 폭력의 인정이 자신에게만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제야 자신의 억울을 표한다. 그러나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분위기는 돌이킬 방법이 없고, 직장과 여자친구와 사회적 체면까지 모두 잃어버린 채 가해자라는 오명만을 남기게 된다.

학교를 떠나던 날, 호리는 교장 선생을 향해 사오리가 취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공격을 가한다. 그는 손녀를 치인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 아닌 교장 본인이라는 소문을 무기 삼아 자신의 분함을 항변한다. 호리는 그녀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남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전하며, 그녀의 죄책에 일격을 가한다.

두 사람 모두 타인의 현존을 잊어버린 채, 오로지 자신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하나의 사실을 대하는 전혀 다른 시각은 듬성듬성 빠져 있는 오류의 틈새를 메우지 못한다. 괴물은 이 틈새에서 태어나 이기(利己)를 먹이 삼아 무럭무럭 자라난다. 1인칭 시점의 고수는 방어를 위한 지표를 단단하게 만들어 그 속에 들어 있는 감정의 줄기가 자라지 못한 게 만든다. 따라서 사오리와 호리의 합심 역시 자신의 편향을 인정하며 아이들의 안위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난 이후에야 가능해진다.


독특한 것은 <괴물> 속에는 틈새를 직시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미나토의 짝꿍, 키다이다. 그녀는 미나토와 요리의 관계를 가장 먼저 눈치채는 인물이자, 요리를 향한 미나토의 관심과 혼란한 감정의 요동을 옆자리에서 목격하는 인물이다. 키다는 같은 학급 내에 위치하여 사건의 전후를 모두 관찰 가능하고, 관계적으로도 얽혀 있지 않아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기류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조용한 응원인지, 은밀한 소비인지 속을 알 수 없는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든 기회를 그들에게 넘겨줌으로써, 모종의 관계를 엮어낸다. 그녀는 두 사람이 탬버린 심부름을 함께 가도록 요리를 추천하고, 날아든 걸레를 미나토에게 토스한다. 미나토의 마음을 알고 있는 그녀는 이후 벌어질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진실을 알아챈 어린 소녀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동성연애를 그녀가 읽고 있는 BL 만화책처럼 음미한다.


#3. 괴물의 얼굴 (2)

괴물은 전형과 일반이라는 집단과 사각(死角)의 사이에 숨어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정상성이라는 개념을 획득해야 한다. 너와 나 사이에 약속된 공통, 혹은 교차하는 접점이 있다는 것은 삶을 꾸려나감에 있어 이질감을 줄여주고, 같은 분모를 공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하지만 정상적이다라는 관념은 다수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범위 밖이라는 오차를 수반하기 마련이며, 단지 수가 많다는 것이 표준을 대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두의 동의를 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이 가져다주는 안정은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절대적인 요소이므로 비정상을 가르는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버둥질 치는 것이 보통의 인간이다.

손녀를 둘러싼 교장의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공적인 공간에서 그녀는 수수한 차림새를 갖추고, 복도에 붙은 껌을 떼는 교장 선생님이지만, 사적으로는 떠드는 아이를 못 견뎌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노인이다. 교장에게 있어 가장 최우선의 가치는 직위와 학교라는 교육기관,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녀 자신이다.


프레임 속에 살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는 그녀는 누군가를 제물 삼아 자신의 죄와 정직으로부터 달아난다. 학교를 찾은 사오리에게 그녀가 얻고자 했던 손녀를 잃은 할머니라는 동정 역시 시스템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데서 비롯된다. 공적인 것들로부터 받는 보호가 생존방식인 교장에게 거짓말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고의 방어수단이다.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미나토의 입장에 공감하는 까닭은 미나토의 고백 속에서 자신과 같은 그림자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장 역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만, 그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미나토는 교장과 다르다. 그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요리를 선택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서 혼란한 마음을 더듬고 있는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이 낯선 감정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야기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는 편모인 사오리가 꿈꾸는 보통의 가정을 자신은 이뤄낼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있기에 너무도 괴롭다.


그래서 미나토는 돌아가신 아빠에게 묻는다. 나는 왜 태어났느냐고. 현실의 세계에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과 자신도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존재론적 의문을 품게 한다. 그는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진실로 인해 본의 아니게 거짓을 말하고, 진심을 들키는 것이 무서워 사랑하는 대상과 다퉈야 한다. 교장과 함께 트럼펫을 부는 미나토의 답답한 속은 후- 하고 불 때만, 나아질 뿐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반면, 사각지대를 터전으로 삼은 아이도 있다. 온전한 가족을 가져본 적도, 이성을 사랑한 적도, 친구와 교류해 본 적도 없는 요리는 소외받는 것이 당연하고 또 익숙해서 아프다고 소리 내지 않는 아이이다. 그는 주류에, 정상의 범주에 들어본 경험이 없기에 자신에게로 향하는 이유 없는 화살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는 홀로 있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았고, 끝내 이해하여 타인의 괴롭힘과 장난까지도 수용하는 담담함을 보인다.


요리는 자신에게 솔직하기에 돼지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고,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내뱉고 즉각적으로 사실을 정정한다. 또 걸스바를 드나드는 아버지의 경로를 바꾸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고, 충동적인 미나토의 포옹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요리는 세상을 향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너른 품을 가진 아이다.

열린 결말이므로 엔딩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나토가 요리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욕조 속에서 죽은 상태였고 요리와 헤어질 수 없는 미나토는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다던 빅크런치에 맞추어 폐열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산사태에 깔려 사망하는 것으로 보았다.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현실에서의 삶이 빛 속으로 내달리는 그들의 해방감 보다 행복할 수 없으리라 보았기에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PS. 모처럼 긴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았다.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인간군상이 잘 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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