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 테일러 러셀, 티모시 샬라메, 마크 라이런스
본즈 앤 올(2022) |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 티모시 샬라메, 테일러 러셀, 마크 라이런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세상속으로 *
아빠가 떠났다. 둥지 밖으로 떨어진 매런은 엄마의 고향인 미네소타주로 향한다. 아빠가 그녀에게 남긴 것이라곤, 운전하는 방법과 녹음테이프 그리고 자신의 출생신고서 뿐이다. 목소리로 등장하는 아빠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작별인사와 함께 매런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점부터 시작된 그녀의 식인 행위에 대해서 천천히 풀어나간다.
만 18세라는 나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법적 기준, 홀로서기를 할 시간.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인간과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온 그녀는 유일한 가족이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고별선언을 기점으로 성인이 된다. 그것은 그녀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인간의 탈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보호자마저 떠나버린 이 상황을 이제는 오롯이 스스로 감내해야만 한다.
비 피할 곳을 찾아 숨어든 건물 벤치에서 그녀는 어느 늙은 남자를 만난다.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은 저 멀리서 그녀의 냄새를 맡고 그녀를 찾아왔다. 매런은 셜리를 통해 이터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지금껏 단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이터의 존재. 강제적인 독립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매런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 줄 첫번째 어른을 만나게 된다.
그는 후각을 이용하라는 충고와 더불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먹여야 한다는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수명이 다한 노부인의 집에 머무르며, 그녀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이 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이튿날, 시체가 된 그것을 짐승처럼 뜯어 먹는다.
이터의 삶을 오래 살아온 셜리는 자신이 ‘먹은’ 사체의 머리카락을 땋아 보관하는 습관과 매런의 사정을 꿰뚫는 혜안을 동시에 발휘한다. 또한 사람을 먹어야만 하는 너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빠와 달리, 그는 그녀의 입장과 같은 편에 서서 식인 행위에 대한 최대치의 정당성을 그녀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셜리가 내뿜는 기괴한 기운은 그의 곁을 떠나게 만들고, 며칠 뒤 매런은 ‘리’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젊은 이터인 그는 슈퍼마켓에서 위험에 빠진 매런을 구해주는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여정에 동행한다. 리는 자신이 잡아먹은 남자의 옷을 입고, 그의 집에 들어가 밤을 보낸다. 남자의 집에 있는 <릿 잇 업> 앨범을 발견한 그는 밴드 소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지만, 거울에 비친 피 묻은 얼굴을 발견하고 금세 흥겨운 마음을 거두어낸다.
자신을 인지하는 순간,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이터의 숙명은 사람을 먹어야 하면서도 언제나 먹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동반하는 형태를 가진다. 본능의 발현은 시시각각 그들을 덮쳐 오지만, 후회는 뒤늦게 찾아오기에 먹고 난 이후, 자리하는 속죄의 마음도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쨌거나 그들도 먹어야 살기 때문이다.
* 이터(Eater)의 인생 *
발달 된 후각과 입으로 살점을 뜯어먹는 모습은 짐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식인의 본능을 가진 인간이며, 인간의 몸을 가진 짐승이다. 그들은 늘 주변을 경계한다. 불을 켜지 않고, 창문도 열지 않으며, 자신의 냄새도 지운다. 자신들의 본능을 이해하는 이들은 같은 동족 마저도 믿지 않는다. 서로를 물어뜯어 죽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야생의 습성을 가진 자신마저도 의심하기 때문이다.
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멀리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이기에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한다. 특히나 여동생 케일라는 그에게 특별하다. 여동생은 언제나 그녀의 곁에 머물지 않으려는 리의 부재를 타박한다. 얼핏 싸우는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의 대화도 사실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의 지속에서 터뜨리는 불만 사항일 뿐이다.
여동생의 운전 연습 이후, 자신이 살던 마을의 곳곳을 매런에게 소개한 리는 자신이 일했던 외양간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다. 홀로이던 인생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싹틔운 두 사람은 도로 위와 계곡 안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쌓아나간다.
“약쟁이들과 똑같아.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사랑이 널 자유롭게 해줄지도 몰라. 사랑이 자유를 줄지도.”
물놀이를 끝낸 어느 오후, 낯선 남자 두 명이 매런과 리를 찾아온다. 이터와 추종자로 맺어진 그들은 먹이사슬의 균형을 깬 기이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번 경찰이던 추종자는 식인을 목격하고도 그를 체포하지 않고, 되려 짐승의 영역으로 넘어와 자신도 그와 같은 종족이 되기를 꿈꾼다고 말한다. 매런은 삶의 모순으로 남아 있던 자신의 본능을 추종하는 인간의 태도에 구역질을 느끼고, 리는 매런을 향한 자신의 깊은 감정을 이터에게 들키고 만다. 결국, 두 사람은 낯선 남자를 피해 또 다시 도망한다.
공복은 어김없이 그들을 찾아온다. 리는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직원 하나를 꼬셔 죽이고, 그의 살점을 뜯으며, 허기를 채운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그의 옷을 입고 그의 집으로 향하지만, 게이인 줄 알았던 직원의 집에는 아내와 갓난 아기가 가장인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몰랐잖아. 우린 몰랐다고!”
“뭔가 느껴야 해. 우린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고, 모르는 사람의 삶도 망치지! 미래도 없고 자신을 좋아할 수도 없어. 우린 그게 불가능해. 너무 버거워. 이렇게 60, 70년을 산다고?”
육식동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분주하고, 먹잇감이 되는 인간과 공존할 수 없기에 괴리와 자책의 간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굶주림과 싸우고, 본능에 굴복하며, 포식 후에 찾아오는 책망에 휩싸여 있다가 이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 단지 식생활을 영위했을 뿐이나 식인이라는 비인간적인 형태는 엄연한 범죄이자 야만의 영역에 속한다. 때문에 인간 사회의 경계(境界)에 서서 늘 주변을 경계(警戒)하며, 경계(驚悸) 서린 마음을 추스르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매런은 출생 신고서에 적힌 외할머니의 집을 찾아가 엄마의 소식을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가둔지 오래되었고, 행방을 찾아 향한 주립병원엔 고통과 비명이 난무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만난 엄마, 저넬은 짧은 스포츠 머리와 양팔이 잘린 상태로 약에 잔뜩 취해 있다. 언어능력을 상실한 그녀는 15년전 쯤 썼다던 편지를 전하는 것으로 딸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사랑의 세계에 괴물은 존재하면 안돼.”
매런은 자신과 똑같은 종족인 엄마가 자신을 해치려 했다는 사실과 자식을 보호하지 않은 채 떠나버린 사실을 알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아기를 먹어버릴까 두려워했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자신의 상황보다 낫다고 위로한다. 리는 이터의 삶을 먹거나 자살하거나 갇혀 사는 세 가지의 형태로 나누며, 제약이 많은 식인종의 삶을 관조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에 반해, 매런은 여전히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사랑(Bones and all) *
"너의 괴로움이 끝나길. 신이 있다면, 널 평범한 소녀로 되돌려주길.“
이 사건 이후로 매런은 리의 곁을 떠난다. 다시 홀로 남겨진 매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셜리와 마주친다.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쫓아다니며, 자신과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매런은 서로 좋아해야 가능한 일이며, 감정의 문제임을 내세워 그의 청을 거절한다.
개체 수 부족과 동족상잔으로 인해 집단을 이루기 힘든 이들은 감정을 다루는 것에도 서투르다. 교류와 교감을 나눌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으며, 방향을 달리하여 뻗어 나가는 호감 앞에 무력하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뒤를 따르거나 체념할 뿐이다.
리는 매런이 자신을 떠난 사실을 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호숫가에서 텐트를 치고 살며, 내킬 때마다 마을로 내려오는 등 들짐승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이전과 달리 고향을 떠나지 않고, 매런을 기다린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매런은 리가 살던 동네를 다시 찾는다. 그녀는 리의 동생 케일라를 만나 아빠와 얽힌 리의 과거에 대해 듣게된다.
오랜만에 재회한 그들은 살고 있던 동네를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 자신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장소로 끊이 없이 이동한다. 리는 동족이었던 아빠가 자신을 물어뜯으려 했던 지난 사건을 털어놓고, 아빠를 잡아먹은 사실을 고백한다.
“나 나쁜 놈이라고 생각 안 해?”
“널 사랑한다는 생각뿐이야.”
보통의 사람처럼 살고 있는 두 사람의 곁으로 셜리가 다시 찾아온다. 그는 마음을 거절당한 상처와 자신을 노출 시켰던 과거에 대한 불안감으로 뒤섞여 같은 이터는 먹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맹세를 깨버린다.
때마침, 귀가한 리는 셜리에 의해 겁박당하고 있는 매런을 목격하고, 셜리의 등 뒤에서 봉지를 씌워 그의 코를 막는다. 순식간에 공격당한 셜리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칼을 들어 리의 폐를 찌르고, 자리에서 일어난 매런은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셜리를 죽인다. 셜리의 사망으로 인해 겨우 목숨은 구해내지만, 폐를 찔린 리가 죽음의 위기에 당도하게 된다.
“날 먹어줘.”
“제일 쉬운거야. 바로 사랑.”
“날 사랑하고 먹어줘.”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된 침실과 거실, 그리고 침대 밑에 놓인 셜리의 가방은 매런이 뼈까지 먹어치우는 본즈 앤 올에 성공했음을 암시하며, 사랑하는 리와 자신을 사랑했던 셜리까지도 자신의 내부로 흡수해버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손에 닿는 신체까지도 먹어치우는 이터의 사랑.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몸 전부를 체내로 소화해버리는 이들의 사랑법은 식인종이라는 종(種)의 존재를 삭제해버림으로써 가장 강력한 실존을 구현해낸다. 비록 먹고, 먹히는 원초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 종(種)의 특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