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에 대한 서평
학습의 첫 번째 단계의 효과는 학습자가 관련 주제에 빠져들어 매력을 느끼고 전문적인 정보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 소셜 애니멀, p.136.
cf. 1단계에서 주의할 것 : 흥미를 가지고 지식을 찾으면 찾을수록 앞으로 내가 공부하고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방대함을 보게 된다. 땅 위로 솟아오른 빙산의 일각을 보고 얼음을 캐기 시작했는데, 땅속 깊숙히 박힌 거대한 얼음의 존재를 희미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거나 의욕을 상실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학습의 목적이나 대상, 범위를 수정해도 괜찮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지식의 범주와 양을 파악하고 조금씩 정리해나가야 한다.
자동차를 처음 운전할 때는 모든 동작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몇 년 혹은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운전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학습은 읽기나 대수학 같은 낯설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꾸준하게 흡수해서 자동화하는 과정이다. 자동화 과정은 새로운 것들에 작동하는 의식적인 정신을 한층 활성화시킨다. (중략)
자동화는 반복을 통해서 획득된다. 해럴드는 그리스 관련 책을 읽고 나서 그리스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를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중략)
여태까지 읽은 책을 다시 읽으라고 하자 해럴드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파악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요지와 주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번에 밑줄 친 문장이 새로 읽을 때는 전혀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대신 무시했떤 문장이 결정적인 문장이었다.
- 소셜 애니멀, p.138~139.
해럴드가 책을 더 읽으면서 뇌 안에 있는 정보를 재조직하는 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일련의 내면적인 연결 작업 덕분에 그 주제의 새로운 측면이 중요하게 보였고, 예전에 매혹적이고 중요하게 보인 측면은 시시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문 지식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략)
전문가는 이 구조를 자기 것으로 체화해서 갖고 있으며, 그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암묵 지식으로 가지고 있다. 경제학자는 경제학자답게 생각하고, 법률가는 법률가답게 생각한다.
- 소셜 애니멀, p.140~141.
테일러 선생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원칙은, 논문을 75퍼센트 정도 완성한 다음에 비로소 논문을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논문 집필 이전에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해당 주제를 다양한 각도와 분위기에서 살펴봐야 한다. 관련 사실을 여러 방식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다른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하고, 통찰력이 머릿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도록 해야 한다. (중략)
테일러 선생이 해럴드가 일기를 쓰기를 바란 이유는, 내면에 묻혀 있는 지식을 될 수 있으면 저항 없이 끄집어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해럴드가 공상에 빠져 있기를 바랐다. 공상을 통해서 개발해 둔 직관을 언어로 전환시키기를 바랐다.
- 소셜 애니멀, p.142.
해럴드는 머릿속에서 통찰이 번뜩이는 경험을 했다.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멋진 생각 하나가 내면에서부터 불쑥 튀어나왔다. 해럴드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황홀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의 정신은 해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텅 빈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며 생각을 통합했다. 해럴드는 드디어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디어 쓰고자 하는 논문의 개요가 나타났다. 해법이 무엇인지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혀 맞지 않던 모형들이 갑자기 너무나도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생각이라기보다는 어떤 느낌이었다. 거의 종교적인 느낌이었다.
- 소셜 애니멀, p.150.
해럴드의 통찰은 그리스어 '투모스(용맹함)', '아르테(탁월함)', '에로스' 등을 받아들여 이것을 자기 삶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해럴드는 두 개의 개념 공간을 합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세상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세상을 더 영웅적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해럴드는 논문에 필요한 메모를 열정적으로 써나가기 시작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인 투모스가 고등학교 생활에서 나타나는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열심히 메모했다. 전에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과거의 정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한데 섞었다. 이렇게 논문을 쓰다보니, 논문이 알아서 저절로 써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 소셜 애니멀, p.152.
테일러 선생은 해럴드가 무의식을 넘나들고, 의식적인 과정과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섭하는 방식으로 논문을 쓰도록 안내했다. 처음에는 핵심 지식을 숙지하고, 그 다음에는 그 지식이 머릿속에서 즐겁게 숙성되고, 지식에 질서를 부여하고, 관련된 자료를 한데 녹여 통합하고, 마법과도 같이 통찰이 의식에 튀어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마침내 떠오른 통찰을 가지고 논문을 완성하게 한 것이다.
- 소셜 애니멀, p.153.
이OO 학생에게
"상품형태모방에 관한 대법원 재판례 및 최근 5개년 사이의 주요 하급심 재판례의 검토"라는 제목으로 이OO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는 매우 체계적이고 실증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교수 개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특히 최근 5년간 하급심 재판례를 긍정례와 부정례로 분류하고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소개·검토한 점이 매우 우수합니다. 개별 하급심 판결들마다 사실관계, 법원의 판단으로 나누고 소결 형태로 작성자 본인의 법률적 의견을 참고문헌을 인용하면서 구체적으로 판단한 점도 매우 돋보입니다. 이OO 학생이 그간 부정경쟁방지법을 열심히 공부해왔다는 것을 보고서 내용을 통해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을 좀 더 요약·정리하여 논문 형태에 맞도록 서술체계의 일관성을 도모한다면 학술논문으로 발표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보완할 점을 지적하면, 보고서에서 소개한 하급심 판결들의 그 후의 행방이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대로 확정된 것인지 아니면 항소나 상고되었는지 여부입니다. 또한 수업시간에도 몇 차례 강조한 것처럼 특히 패션상품을 상품형태 모방행위에 대한 규제에 기해 보호한 사례가 있으면 조사하여 보고서에서 소개해 보라고 부탁한 바 있었는데 이OO 학생의 보고서에서는 그에 관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또한 보고서에 소개한 하급심 판결들 중 서울고법 2014. 4. 24. 선고 2013나63211 판결의 경우는 가방 수납공간의 모양과 배치, 크기, 내부 수납공간의 모양 등이 상품형태로서 보호대상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것인데 보고서 12~14면의 사진만으로는 수납공간의 특색을 확인할 수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사소한 사항이라 할 수도 있지만 마가렛트 사건은 대법원 결정이므로 이를 소개할 때 '판결'이라고 표현(가령, 29면)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매우 우수한 보고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