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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Jan 09. 2020

정당화된 지식의 위험성, 그리고 신뢰 회복의 첫걸음

- 김승섭 저,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 대한 서평


지식은 시대와 권력의 산물이다.
- 미셸 푸코


1. 권력과 지식


국가 권력, 자본 권력, 혹은 개개인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미시적인 권력이든, 모든 권력은 지식을 통치의 무기로 삼는다. 미셸 푸코가 '순종하는 신체'라고 명명했듯이, 권력이 독점한 지식은 개개인의 사유와 몸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권력 작용의 메커니즘은 지식의 선별화 과정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처음부터 윤색과 왜곡의 의도로 선별되어 연구되는 지식이 있고, 순수한 의도로 선별되어 연구되는 지식이 있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후자의 경우에도 처음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종국적으로는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선별적인 생산과 유통으로 해당 지식이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상식'이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면, 해당 지식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대가 변해도 해당 지식은 마치 고인 물과 같이 되어, 현실에 맞지 않는 왜곡된 모습을 갖게 되기 쉽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말하고 쓸 때 비로소 지식이 되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가 오늘날 상식이라 부르는 지식들 역시 과거 특정한 사회적 과정을 거쳐 생산된 결과물이다. 그 생산 과정에는 그 사회의 편견과 권력관계가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집단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필요에 따라 왜곡되고 편향된 지식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 우리 몸이 세계라면 p.13.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된다.
 - 우리 몸이 세계라면 p. 62.


권력의 선별적인 지식 생산과 유통은, 사회 일반에서 특정 지식만이 정당화되어 살아남게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권력의 후원으로)수많은 자본이 들어간 연구, 소위 말하는 '권위있는 기관'이나 '권위자'에 의한 연구, 이러한 연구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러한 지식의 진위를 감별하거나 비판하기 어려운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우리의 몸을 중심으로 해서, 위와 같이 정당화된 지식의 위험성을 논증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이 접목된 시각으로, 우리 몸을 둘러싼 수많은 비합리적인 관점과 지식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극복되어왔는지를 여실히 나타낸다. 김승섭 교수는, 이 책에서 '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는 과거의 비합리적인 지식의 유통사례가 다수 등장하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편향적인 관점과 지식이 산재해있다. 우리는 과거의 오류와 경험을 발판 삼아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치판단과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어떤 명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설명을 찾아가는 과학적 사유
- 우리 몸이 세계라면  p. 8.
과학은 확고한 진리의 묶음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에 질문을 던지는 비판적 사고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합리적인 사유 방식이다.
- 우리 몸이 세계라면 p.242.



2. 권력의 지식 정당화에 대한 대항 : 질문(문제제기)


[질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여기서의 질문이란 기존의 정당화된 지식과 상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백인이 흑인보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지위를 향유하였고, 이러한 차별은 지극히 정당하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백인과 흑인,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별을 정당화할만한 차이가 과연 존재하는지 '질문'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질문과 문제제기, 그리고 이에 뒤따른 여러 행동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꾸었다.

 

질문이 없다면, 비합리적이고 심지어는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지식들은 '상식의 왕좌'에 똬리를 틀고, 우리 몸을 해치는 통치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여러 사례들이 말하고 있듯이, 이러한 지식은 상대적 열위에 있는 계층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야기하고 불신의 근거를 제공한다. 불신은 무서운 전염병과 같이 빠른 속도로 전이되며, 전이가 진행될수록 저신뢰 사회의 도래가 앞당겨지게 된다. 요컨대 합리적인 질문을 허용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지식을 선별유통하는 사회는, 기업이 파산하는 것과 같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운명에 처하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문제제기를 발판삼아본다면,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서는 어떠한 모습이 필요할까?


결국, 우리 사회가 신뢰를 상실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질문과 문제제기가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제도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제도는 법의 영역을, 그리고 분위기는 사회적 인식의 영역을 말한다. 우리 사회가 질문과 문제제기를 통해 적절한 제도적 조치를 취하는지, 질문과 문제제기를 대하는 태도와 분위기는 어떠한지 등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최악의 사회는 이를 묵살할 것이며, 차악의 사회는 질문을 수용하는 척하면서 권력 친화적인 또 다른 질서를 창출할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는 질문을 수용하고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히 살피며, 다수논리에 빠지지 않고, 취약 계층의 보호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판에 열려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한 유연한 사회로 인식할 수 있다면, 사회에 산적한 문제가 여전하더라도 사회적 신뢰망이 조금씩 복구될 것이다. 사회적 신뢰망은 문제 해결 그 자체가 아닌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다행스럽게 몇몇 질문의 결과들로 우리 사회는 위기의 순간을 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분투와 경합으로 점철되는 현대사의 여러 풍랑을 지나 우리 사회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단순히 차별을 철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헌법상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가령 장애인고용할당제, 여성채용목표제 등)를 취해 종래부터 차별을 받아왔던 취약 계층을 우대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과제가 많다. 문화인류학자인 김찬호 교수가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핵심 키워드로 모멸감(상대방이 나를 업신여기고 얕잡아보는 감정)을 이야기했듯, 사회적 신뢰 상실로 발전할 수 있는 단면들이 있다. 가령, 가치의 획일화, 왜곡된 민족주의에 기반한 배타적인 태도, 상대적 계층의 공고화 등 '질문과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하루아침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상당히 많은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위해서는 '코크란 도서관'과 같이 신뢰증진의 도구로 기능하는 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는 제도가 될 수도 있고, 인식의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한 개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참고 :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의 방법론은 미셸 푸코의 '계보학적 방법론'과 매우 유사하다. 김승섭 교수가 미셸 푸코의 방법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심증은 있으나 참고문헌에서는 푸코의 저서를 찾아볼 수 없어서 푸코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푸코는 20세기의 가장 핫한 철학자 중 하나이고, 푸코만 전공하는 학자들도 다수인 만큼, 철학자나 사회과학자가 푸코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푸코는 임상의학, 정신병리학 등에 대한 연구도 다수 수행하였기 때문에, 역학자, 임상의학자들도 푸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2장 <시선>의 소제목 '누가 전시하고, 누가 전시되는가' 밑에 "보는 시선이 지배하는 시선이다."(미셸 푸코, 임상의학의 탄생)라는 인용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푸코의 계보학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푸코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동시에 사회학자다. 푸코의 사상은 한마디로 ‘타자’의 사회이론이다. 타자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정상인과 비정상인, 서구인과 비서구인 등 이제까지 철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배제돼 온 후자의 그룹을 말한다. 타자의 사회이론이란 이러한 타자를 다뤄온 지식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학문적 시도를 뜻한다.

타자를 연구하기 위해 푸코가 활용한 방법론은 ‘지식의 고고학’과 ‘권력의 계보학’이다. 고고학이 특정한 시대에서의 담론의 형성과 시대적 변화에 따른 그 담론의 전환을 다루는 방법을 말한다면, 계보학은 이러한 형성 및 전환의 조건 가운데 담론(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고고학을 방법론으로 하여 다룬 저작들이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이라면, 계보학을 방법론으로 하여 다룬 저작들이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1975), <성의 역사 1>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07122042005#csidxc30aad448a5ca1192c4d6c5c031b7a0


미셸 푸코가 권력의 계보학이라는 주제로 저술한 대표적인 저서인 <감시와 처벌>에 관한 아래의 해설도 참고할만하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60618&docId=892552&categoryId=6061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336709


#서평 #씽큐베이션 #김승섭 #우리몸이세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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