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77 제1화 02 논픽션 스토리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IQ 77 제1화 02


경제상승률은 상승곡선을 타고 있지만, 서민 경제는 끝 모를 불황으로 허덕이는 때이다.

고칠이는 갯벌로 만연한 인천에서 엄마의 따스한 자궁을 힘껏 밀쳐내고, 차디찬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가 태어난 동네는 갯벌만큼 빼곡히 들어선 판잣집, 그리고 까만 연기를 내뿜는 공장과 냄새 나는 개천이 한 가운데 턱하니 있었다.


그런데 그건 잠시뿐이었다.


고칠이는 운이 좋았을까. 그의 엄마가 가끔씩 남의 집 일손 도우며 몰래 모아놓은 돈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 덕분에 그는 태어난 집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2층 양옥집과 예쁜 빌라들이 줄 서 있는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소위 ‘잘 산다’는 동네에서 살게 된 거다.


마법이 감도는 마을이라고나 할까.


고칠이 아빠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아빠는 월급이 하숙집 월세 정도 나오는 신문사에서 일하시다가, 당시 ‘잘 나간다’는 철강회사로 일터를 옮기셨다. 그때부터 엄마는 남의 집 일은 줄이시고, 교회에서 환자 방문 등을 천직으로 여기며 봉사 활동을 하시게 된 것이다. 집안이 안정되니, 더 열심이셨다. 고칠이 집은 남 보기에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넉넉한 가정이었다.

아빠는 종종 애써 입가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기자 커리어를 자랑하듯 이렇게 말하시곤 했다.

“박정희 정부 때는 기자가 힘이 셌지. 신문사에 있을 때, 기자에겐 야구 등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 관람은 공짜였거든.”

그렇지만 엄마는 자주 몸이 아프시다. 그래서 더 교회 봉사 일에 매진하시는 지도 모른다.

엄마는 누나를 갖게 됐을 때도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니셨다. 몸이 좀 나아졌을 땐 고칠이를 갖게 되셨단다.

그가 말하는 도중에, 나는 '민주적 도덕 공동체' 라는 말이 있다며, 그에게 박정희 정부 시절의 배경 지식을 말해줬다.


“이 말은 참 어려운 말처럼 들리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아요. 이 말은 '민주적, 도덕적, 공동체'란 세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아이큐 77인 그는 그래도 지식에 대해 갈망하고 있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주'는 국민이 주인 되는 것이고, '도덕'은 착한 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공동체'는 학교나 가정처럼 함께 어울려 사는 집단인 거예요.”

“그러면 박정희 시절은 국민이 주인이라기보다 기자가 주인인 거네요?”

그는 박정희 정부 때를 말할 때, 이 얘기를 내가 왜 불쑥 꺼냈는지를 아는 눈치였다.

“기자가 주인라기 보다는……그래도 많이 접근하셨어요.”

내 말을 우선 끝까지 들어보라며, 말을 이어갔다.

“간단히 말해, 개인과 집단이 남에게 억지로 강요당하기 보다는 자율성과 독자성이 보장되면서, 동시에 사회정의가 실현된 공동체, 혹은 집단 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좋은 말은 다 갖췄죠? 대체로 이 공동체는 함께 사는 삶, 자유로운 삶, 인간다운 삶을 지향해요. 이 가운데 특히, 자유로운 삶을 위해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가 등장했어요.”

“복잡하네요. 기자가 국가권력의 편이었나 보네요.”

그렇다. 기자는 권력의 편이었던 것이다. 아이큐가 낮은 그도 남들만큼 이해력은 있어 보였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를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기준과 잣대가 모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박정희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단체와 같은 존재는 거의 없었다는 거예요.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는 있어요. 시민단체는 시민의 가입이 적은 편이라서 '시민이 없다.'는 말도 하고 있고요. 친정부적이라는 말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나는 국가권력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감시자 역할 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등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유로운 질서를 마련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설명했다.

고칠씨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먼 과거로 날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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